법원, 논란 됐던 ‘이정근 녹취록’ “위법하지 않아”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의원들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받은 혐의로 국회의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30일 정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허종식 민주당 의원에게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3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3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윤관석 전 무소속 의원에게는 징역 9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성만 전 무소속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당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정당민주주의이고 주권자인 국민은 대부분 정당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하므로, 정당 내부 선거에서 선거인을 돈으로 매수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는 민주주의 뿌리를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선출되는 당대표는 2022년에 치러질 대통령선거까지 당대표 업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향후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 등 엄중한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며 “당대표 당선을 위해 돈봉투를 주고받은 것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이번 사건으로 당의가 왜곡되는 정도가 컸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허 의원과 이 전 의원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2021년 4월28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현 소나무당 대표)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해 윤 전 의원으로부터 각각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 의원은 같은해 3월쯤 송 후보의 경선캠프 관계자 등에게 두 차례에 걸쳐 부외 선거자금 1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윤 전 의원과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과의 통화, 이 전 부총장의 증언 등을 살펴보면 300만원이 든 돈 봉투 수수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부외 선거자금과 관련해서도 “이 전 의원은 이 전 부총장에게 ‘송 대표에게 말해달라’며 돈을 전달했다”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돈을 준 것이라면 굳이 송 대표에게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검찰에 임의제출한 녹음 파일이 위법해 “증거능력이 없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은 수사기관에 USB(이동저장장치) 3개와 휴대전화 3대를 임의제출하고 변호인 참여하에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제출하고자 하는 전자정보 범위를 명확히 지정했다”며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도 임의제출한 전자정보를 다른 사건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재차 진술했다”고 밝혔다.
돈 봉투 수사의 주요한 근거가 된 ‘이정근 녹취록’이 위법하지 않다는 이번 재판부 판단이 송 대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송 대표는 현재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송 대표 측은 ‘이정근 녹취록’에 대해 “선별작업 없이 통째로 이미징(복사) 한 것”이라며 증거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송 전 대표 캠프 관계자에게 ‘민주당 의원들에게 현금 6000만원 살포’ 지시 등을 벌여 정당법 위반 혐의로 별도 기소된 윤 전 의원이 ‘이중 기소’라고 주장한 것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별개의 행위여서 이중기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윤 전 의원은 지난달 항소심에서 원심과 동일하게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1심 선고를 마치고 허 의원은 “돈 봉투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 당연히 불복할 수밖에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이에 ‘임기 내 확정이면 의원직 상실아니냐’는 질의에는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항소해서 법의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금 300만원을 수수해 정당법 위반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이날 불출석해 다음달 6일 별도로 선고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날 선고가 나온 이들을 포함해 당시 민주당 의원 최대 20명에게 돈봉투가 살포됐다고 보고 계속 수사를 하고 있다. 현직 의원들 일부는 의정활동 등을 이유로 소환조사에 불응한 상태다. 이날 유죄 선고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