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엔 없지만 장터엔 있어요”···현대판 장돌뱅이가 말하는 시장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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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3. 오후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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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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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씨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꾸준하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것이 대벽의 비결 ”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용필 기자


“매일 새벽 2시간씩 물청소를 한대요. 여름인데도 그 젓갈 가게에서만큼은 젓갈 썩는 냄새가 안 났습니다.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한 시장 한복판에서 냄새가 안나니 눈이 갈 수밖에요.”

‘시장에서 손님을 끄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지난 22일 경향신문과 만난 김종하씨(60)는 ‘청결’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장에선 맛 좋고 양만 많이 주면 된다’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어르신은 몰라도 젊은이들은 지저분하면 안 와요. 효율을 높이고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장은 원래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MBC 공채 개그맨인 그는 현대판 ‘장돌뱅이’이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 KBS ‘6시 내 고향’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19년 동안 전국의 전통시장을 750여 곳을 누볐다. 그보다 더 오래, 더 많이 전통시장을 경험한 이는 찾기 힘들다. 그 경험이 최근 책으로 나왔다. <바뀌면 산다>이다.

‘전통시장 전문 리포터’는 그가 선택한 길은 아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에 우연히 캐스팅됐을 뿐이다. 그러나 코너가 정규 편성되고, 19년간 장수한 비결은 그의 배경과 무관치 않다. 그의 부모님은 성남 성호시장에서 대폿집을 했다. 그 역시 중학생 때부터 시장에서 얼음과 연탄 배달을 했다. “전통시장 탐방 코너에 캐스팅됐을 때 그냥 ‘가족하고 이웃들 만나러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 중 비는 시간에 상인분들과 함께 앉아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마늘을 깠어요. 그게 진심 어린 인터뷰와 표정을 끌어낸 비결(?)이라면 비결이죠(웃음).”

가족 같은 그들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촬영은 그 시장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을 대상으로 해요. 그런데 옆 가게가 죽을 쑤고 있는 걸 보면 남 일 같지가 않은 거예요. 쉬는 시간 그 집에서 가서 ‘훈수’를 뒀습니다. 잘되는 옆집, 다른 시장에서 대박 난 집 등의 ‘비결’을 말씀드리곤 했어요.”

‘1대1 강의’는 입소문을 탔고, 강연 요청으로 이어졌다. “오전 10시 경남 통영 시장에서 강의하려면 서울에서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해요. 그 시간에 행사를 뛰면 돈을 더 벌었을 테지만, 감사히 응했어요. 10여 년간 250여 차례 강연을 했고, 그게 유튜브로, 또 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종하씨가 2015년 7월 1일 충남 서산 동부시장에서 상인과 함께 고추를 다듬던 중 코가 메워 코를 막고 있다. 본인 제공


그는 전통시장에선 “돈 버는 데 관심이 없는 집이 돈을 번다”고 했다. “수유전통시장 만둣집 사장님은 최상의 재료를 쓰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어요. 동두천 큰시장 순댓국집 사장님은 곱창에 낀 기름을 떼어내려고 새벽부터 매일 중노동을 했고요. ‘최고’를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도 계속되죠.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건강에 좋은 ‘울금’을 수제비, 찐빵 심지어 추로스에까지 넣어서 ‘울금 먹거리’ 시리즈를 내놨고, 대박이 터졌습니다.”

특히 이런 자세가 수년 또는 수십 년씩 이어지는 게 대박 가게들의 특징이라고 했다. “한 가게 입구에 ‘100-1=0’이라는 문구가 있었어요. ‘100번 잘해도 1번 실수하면 꽝’이라는 뜻이래요. 차별화되고 한결같은 품질과 ‘가성비’가 손님들의 변치 않는 신뢰를 끌어냅니다. ‘꾸준하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것’, 그게 비결이에요.”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그는 대박집들이 이 ‘비결’을 행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을 꼽았다. “사랑방 같은 가게, 100명이 넘는 손님들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장님...가족에게 먹일 걸 만든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연스레 ‘한결같이, 최고의 음식을, 청결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윱니다.”

그래서 시장에서의 ‘바가지 상술’은 “가족의 등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윤을 늘리려 재료를 싼 걸 쓰면 맛부터 차이가 나요. ‘돈 버는 것’이 목적이면 시장에선 망합니다. 시장이 대형 마트나 ‘e커머스’에 비해 갖는 거의 유일한 장점은 상인과 손님이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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