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쑥대밭이 됐지. 누가 농사짓다 총에 맞을 거로 생각하겠어.”
경북 영주시 장수면 소룡리 한 콩밭에서 만난 김모씨(50대)가 최근 마을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를 설명하며 몸을 떨었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 13일 오후 8시30분쯤 유해조수포획단원인 엽사 A씨(67)가 콩밭에서 모종을 심던 B씨(57)를 멧돼지로 착각해 엽총 방아쇠를 당겼다.
당시 그의 엽총은 총알 1발당 20~30개의 작은 탄환을 한꺼번에 쏠 수 있는 산탄총이었다. B씨는 가슴 부분에 8개의 산탄 총알을 맞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김씨는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던 B씨가 주말을 맞아 부모님 일을 도와주다 변을 당했다”며 “주민 모두가 자신도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야생동물로 오인한 총기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와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유해조수 포획을 중단할 수 없는 만큼 자격기준 강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총기사고 8건 중 5건이 사람을 멧돼지 등으로 오인해 발생한 사고로 나타났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올해도 2건의 오인사격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국내에서는 매년 10건 안팎의 오인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2018년 9건(전체 총기사고 중 60%), 2019년 14건(87.5%), 2020년 5건(62.5%), 2021년 8건(80%), 2022년 7건(76.6%) 등이다. 이 기간 사망자는 15명에 이른다.
지난 8일 오전 강원 횡성군 공근면 부창리 마을회관 인근 야산에서는 50대 엽사가 쏜 총에 동료 엽사(50대)가 얼굴 등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충북 옥천군에서 유해 동물을 수렵하던 엽사의 총에 30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서는 오인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일부 엽사들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특히 지자체가 구성하는 야생동물피해방지단의 선발 체계에 문제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생동물피해방지단은 30~50명의 엽사로 구성되는데 최근 숙련도가 낮은 엽사들이 많이 포함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예전에는 협회에서 실력 등을 고려해 엽사를 추천했으나 최근에는 형평성 등을 문제로 공개 모집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실력이 부족한 엽사들이 고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엽총을 사용하기 위해선 ‘제1종 수렵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나이 제한은 없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사격과 4시간짜리 강습을 듣고 정신과 진단서·신체 검사지를 내면 면허를 딸 수 있다.
20년 경력의 한 엽사는 “멧돼지 1마리당 보상금이 크다 보니 엽사들 사이에 경쟁이 생겼다”며 “도망가는 멧돼지를 잡을 사격술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도망가기 전에 먼저 쏘고 보자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멧돼지를 잡으면 환경부로부터 1마리당 20만원의 포상금을 받는다. 여기에 지자체 별로 5만~30만원(사체 이동비 포함)의 포상금이 별도 지급된다. 1마리당 최대 5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ASF 확산 방지 등을 위해 야간에도 수렵 활동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었지만 별다른 안전대책은 없다. 엽사 개인이 야간랜턴이나 열화상카메라를 쓰기도 하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열화상카메라의 경우 가격 대비 성능이 천차만별이라 오인사격을 부추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로인해 정부가 유해 동물 수렵 활동을 부추기는 반면 위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부회장은 “지금이라도 엽사 사격술을 검증하는 기준을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