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금강, 자연 그대로 흐르라

입력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집에서 가까운 정릉천에 청둥오리가 산다. 봄이 되자 겨우내 보이지 않던 오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컷밖에 보이질 않더니, 5월 하순쯤 되자 그동안 알을 품느라 보이지 않던 암컷들이 새끼를 데리고 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엄마 오리는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의 안전을 확인하고 먹이가 있는 쪽으로 새끼 오리들을 이끈다. 간혹 다른 오리가 새끼들 쪽으로 접근하면 서슴없이 다가가 거침없이 밀어낸다. 엄마 주위를 맴도는 주먹만 한 크기의 새끼들은 앙증맞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오리 가족을 바라본다. “어머, 어쩌면 좋아.” “와, 쟤네 좀 봐.” 사람들은 새끼들이 뒤뚱거리는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엄마를 재바르고 야무지게 따라가는 모습에 감탄하며 모두 무사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험한 세상에 갓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일 테다.

얼마 전 금강의 세종보에 다녀왔다. 이 지역은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섞여 있어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가 되어 왔다. 이곳에 사는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물살이 생물이며, 미호종개는 2005년 천연기념물 제454호로 지정됐다. 이들은 주로 수심이 얕은 강바닥의 모래를 서식지로 삼아 살아간다. 물떼새를 비롯한 다양한 새도 이곳에서 먹이와 쉴 곳을 찾는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한다고 강바닥을 파내고 보로 물을 막자 물의 흐름은 정체됐고 모랫바닥은 펄밭으로 변했다. 집을 잃은 생물은 자취를 감췄고 인적도 끊겼다.

‘그깟 물고기쯤’ 말은 이제 그만

2021년 국가물관리위원회는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금강과 영산강의 세종보·죽산보는 해체, 공주보는 부분해체, 백제보·승촌보는 상시개방하기로 했다. 현재 세종보 유역은 보를 오래 개방해 하천생태계가 가장 많이 복원된 곳으로 평가된다. 보 개방으로 강의 ‘자연’이 되살아나 모래톱과 하중도가 생겼고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도 돌아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물관리위원회는 급작스레 금강·영산강의 보 처리 방안을 취소했고 환경부는 세종보 재가동을 발표했다. 세종보 수문을 닫고 물을 채우면 모래톱과 하중도는 다시 물에 잠기고 강바닥은 펄로 덮여 미호종개와 흰수마자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생물이 사라지는 강은 죽은 강이다.

‘그깟 물고기쯤’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작고 여린 생명의 안녕에 마음을 모을 때 인간도 번영한다. 몸도 가장 약한 곳을 잘 돌봐야 전체가 건강해진다. 비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는 인간의 생명도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장애인과 이주 노동자의 삶이 말해준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생물종 감소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겸손하게 비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자리를 뺏지 말아야 한다.

정릉천의 새끼 오리들은 어느새 부쩍 자랐다. 하지만 이전보다 숫자가 많이 줄었고 엄마를 잃은 새끼들도 보인다. 고양이 같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안타깝긴 하지만 자연의 질서다. 오리도 포식자도 살려고 최선을 다했을 테고 이들의 최선은 그 자체로 자연의 질서를 이룬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과잉 개입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해왔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에서 ‘최소화의 원칙’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연에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곧 자연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하지 않다면,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길이다. 비가 많이 오면 정릉천은 수량이 늘고 유속이 빨라져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의 접근을 통제한다. 물이 불어도 여느 때처럼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천을 ‘개조’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화의 원칙에 어긋난다. 과잉 개입이다. 이럴 때는 사람이 피하는 게 맞다.

인간의 힘, 커져도 자연의 일부

자본주의는 언제나 ‘최대화의 원칙’으로 자연에 개입해왔다. 더 큰 이윤을 위해 자연에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배타적 자기 증식을 거듭한다. 하지만 인간은 힘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채,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다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것은 삶의 근본 조건을 해치는 일이다.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몰라도 결국은 큰 탈이 나고야 만다. 기후를 비롯한 오늘의 총체적 위기가 잘 보여준다. 오늘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더 자발적 제한의 겸손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비인간 생물과 공존하는 쪽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자연은 오직 하나뿐인 ‘공동의 집’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집을 독점하려 들면 집은 무너지고 만다.

세종보 현장에서 두 달 넘게 노숙하며 금강의 자연화를 기원하고 촉구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으로 외친다. “열어라, 생명의 물길!” “금강, 자연 그대로 흐르라!”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