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역공·용산 거부' 벽에 잇달아 부닥쳐
'의정갈등 중재'로 급선회 하며 집중력 분산
'당정갈등' 비화 조짐…'내전 가능성' 우려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정 갈등 중재', '채상병 특검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같은 메가 이슈들을 한꺼번에 꺼내 들며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그간 사령탑 부재 등 당내 혼란으로 논의 막혔던 현안들이 '출구 궤도'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다만 잇따라 '역공·거부'벽에 부닥치면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과 비공개로 면담한 사실이 알려진 후, 이번주 '의정갈등 중재'와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통해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한 데 이어, 이튿날인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국민적 동의가 있지만,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것은 절대적 가치"라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우려를 정부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의료개혁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강조해온 '4대 개혁' 중 하나인 만큼, 대통령실은 '정부가 책임 있게 결정할 사안'이라며 곧바로 한 대표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한 대표는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경감시킬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지난 27일 오전 한국거래소 방문 중), "더 좋은 제안이 있으면 더 좋겠다"(27일 밤 페이스북), "국가의 의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고 어떤 게 정답인지만 생각하면 된다"(28일 오전 국회 간담회 직후)고 하는 등 연이어 용산과 각을 세우고 있다.
당 내에선 '한 대표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지지가 친한계 의원들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장동혁 의원은 28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길게 진행돼온 상황과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당정갈등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문제를 당이든 정부든 대통령실이든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 대화를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기자와 만나 "한 달 밖에 안 된 대표다. (한 대표가) '당정갈등'을 유발한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정도로 뛰는 데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다만 한 대표가 갑작스럽게 '의정갈등 중재'로 초점을 맞추면서, 지금까지 야당과 전선을 형성해 온 '채상병 특검법', '금투세 폐지' 등의 논의는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채상병 특검법의 경우 의정갈등 중재와 놓인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 대표가 과연 이를 계속 끌고 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현재 의정갈등 문제가 '당정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어서, 한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까지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을 시에는 '당정 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한 대표가 의정갈등 중재로 시선을 돌린 이유가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출구 전략이라는 말도 나온다. 수평적 당정관계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 대표가, 보다 당 내 의견을 모으기 쉬운 민생 현안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에도 한 대표는 당 복지위원들을 소집, 의정갈등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을 나눴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공식 당내 논의가 아직 한 차례도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한 여당 핵심 관계자는 "제3자 추천 특검법은 당내 반발이 워낙 심한 사안이라 한 대표도 입장을 계속 내세우기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최근 친윤(친윤석열)계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과 만찬 회동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제3자가 추천하는 특검이라도 결국 윤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니, 여당으로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와 함께 당정이 드라이브를 걸던 '금투세 폐지' 역시 주춤하는 분위기다. 한 대표는 금투세 폐지를 내달 열릴 것으로 보이는 여야 대표 회담의 '제1 의제'로 꺼내려 했으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한 대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에 전격적으로 힘을 실으며 회담 화두는 '의정갈등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만약 회담에서 양당 대표가 '금투세 폐지'를 합의했을 때, 이 대표도 민주당 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반대급부로 가지고 와야 할 게 있지 않겠나"라며 "이 대표 입장에서 한 대표가 의정갈등 중재안을 밀고 나가는 게 '제3자 추천 특검법' 관철 만큼 매력적인 카드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 대표가 여당 대표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선 한 이슈라도 성과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박 교수는 "야당에서 한 대표를 '반바지사장'이라고 비판하는 게 결국 한 대표가 원론적 얘기만 하고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며 "한 대표가 앞으로 어떤 수준의 결심과 행동을 앞으로 할 지에 따라, 의외로 현재 막혀있는 이슈의 진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