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출액 10조'가 무색하게 걸핏하면 '게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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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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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대신 게임하는 청년, 근로 시간 줄었다."

여가 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청년이 많아지면서 이 계층의 노동 공급이 감소했다는 보고서가 게임 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은행이 개인의 여가활동과 노동공급의 변화를 분석한 ‘컴퓨터 관련 여가(recreational computing)와 노동공급’ 보고서다.

활발히 근로 활동을 해야 하는 청년층이 '게임 때문에' 구직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IT 기술 발전에 따른 제도적 변화와 여가 선호도 변화 등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게임을 폭력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례도 있다. KBS 시사프로그램 '스모킹건'은 '2011년 의사부인 사망 사건'을 다루면서 범인의 취미 활동이었던 게임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작 이 사건을 판결한 대법원은 게임이 근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사회 문제를 게임에서 찾는 일이 어제오늘은 아니다. 게임은 여전히 학부모들에게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며, 기성세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실생활에서도 폭력적일 거라는 편견도 흔하다.

금품을 노리고 발생한 사건에서도, 길거리에서 화를 참지 못한 이가 범죄를 저질러도, 이들이 게임을 조금이라도 즐겼다면 '폭력적인 게임 탓'으로 프레임이 씌워지고 만다.

게임 탓을 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사회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지난 2일 진행된 '2024 게임과학포럼'에서 윤태진 디그라한국학회 학회장은 "게임에 대해서는 일정한 '혐의'를 가지고 연구를 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혐의'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뜻한다.

게임의 역기능이 과학적으로 일관되게 입증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美 스탠포드 대학의 브레인스톰 연구소는 수개월에 걸쳐 게임과 폭력성에 대한 82개의 연구 논문을 검토했고, 그 결과 비디오 게임과 폭력성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2017년 독일에서도 게임 이용자와 비게임 이용자를 그룹으로 나눠 연구한 결과, 두 그룹의 공격성과 뇌 반응 차이는 없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질 높은 게임 이용이 청소년들의 신체·심리적 요인에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게임은 이미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게임 시장은 매출 20조원, 수출액 10조원을 기록했다. e스포츠는 기성 스포츠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정부도 'K-콘텐츠 도약 전략'의 일환으로 게임 산업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게임 탓'을 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게임 업계를 지원하지는 못할 망정 근거 없는 편견으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이제는 '게임 탓'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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