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내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출하량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최근 'AI 거품론'과 함께 HBM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25일 2분기 실적설명회를 통해 “올해 연간 HBM 매출이 전년 대비 300% 늘어날 전망”이라며 “내년 출하량은 올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주요 고객사와 내년 HBM 물량까지 협의를 완료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내년 출하량을 예측했다고 덧붙였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처리 성능을 개선한 메모리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인공지능(AI) 서비스 구현에 사용되고 있다.
GPU와 HBM이 한 데 묶여(패키징) 사용되기 때문에 엔비디아 등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와 HBM 제조사의 공조 및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SK하이닉스가 고객사와 물량 협의를 완료했다는 건 사실상 내년 주문까지 이미 받았다는 것으로 이에 맞춰 생산 및 출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HBM 공급과잉 우려에 대한 반박으로 보여 주목된다.
최근 글로벌 IT 시장에서는 AI 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AI 서비스들의 활용도 및 사용처가 낮아 투자 대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 삼성전자나 마이크론과 같은 반도체 제조사들이 HBM을 공격적으로 늘려 공급 과잉 발생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투자 증가는 곧 공급 과잉이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규현 SK하이닉스 D램 마케팅담당은 “HBM의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 등을 고려하면 투자가 증가해도 비트 증가는 제한적”이라며 “생산 증가 제약은 HBM 세대가 업그레이드될수록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HBM은 1년 이상의 고객 계약 물량 기반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있어서 투자 증가는 곧 제품량 주문 증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여전히 공급 부족 현상이 있다고 강조하며, 향후 다양한 응용처에 AI 기술이 적용되면 프로세서 인 메모리(PIM) 등 새로운 메모리 제품이 출현하고 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HBM3E가 HBM 출하량의 50%를 넘어서고, 내년 상반기에는 12단 HBM3E 비중이 8단 HBM3E를 앞설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어드밴스드 매스 리플로우-몰디드 언더 필(MR-MUF) 기반의 12단 HBM4를 출하할 계획이다. HBM4부터는 고객별 요구 기능을 담는 '맞춤형 HBM'이기에 수주 성격이 더욱 짙어진다.
낸드는 고용량 기업용 SSD(eSSD) 수요 대응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서버에서 저장해야 할 데이터가 급증하면서 수요와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에만 eSSD 매출이 전년 대비 4배가량 성장하고, 낸드 내 매출 비중은 5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초 128TB 제품을 쿼드 레벨 셀(QLC) eSSD를 출시해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 신규 구축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동시에 일반 서버 교체 수요가 발생해 우호적 사업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7~2018년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데이터센터의 장비 교체 주기도 도래했기 때문이다. HBM을 제외한 서버 D램은 올해와 내년에 약 20% 중반대 성장률을 예상했다. 대다수의 D램이 HBM 생산능력 확대에 쓰이면서 일반 D램의 수익성도 높아질 것으로 봤다.
SK하이닉스는 무리한 투자보다는 확실한 고객 수요에 맞춰 D램, 낸드 생산능력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투자 규모가 연초 계획보다 증가한 데 이어 내년에도 M15X, 용인 클러스터 등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현금흐름 범위 내에서 집행해 투자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