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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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1.09. 오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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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민주당이 최상목 권한대행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다 실패한 공수처가 경호처를 지휘해 순순히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는데, 최 대행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한대행도 대통령인데, 공수처가 공문을 보내 사실상 지시(?)를 한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공수처법에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도록 명문 규정이 있는데도 공수처장이 권한대행에게 관여해 달라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정치의 사법화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달여 기간 동안 고발 건수가 70건을 넘었을 정도다. 과도한 정치의 사법화는 특정 이념 지향성이 강한 일부 판검사들의 정치화를 부추기고 나아가 국민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촉매가 되고 있다.

법을 집행하거나 판결하는 사람들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주장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검사의 기소는 법원의 판결에서 바로잡힐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법원의 판결, 특히 항소심 판결에서 판사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에 따른 판결이 이루어지면 극도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로 정치경제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의 혼란이 대표적 사례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친 소환조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어 체포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하지만 탄핵으로 직무는 정지됐지만 엄연한 현직 대통령을 강제로 체포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을까.

증거는 차고 넘친다니 증거 인멸의 위험성은 없을 것이고, 현직 대통령의 도주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더욱이 내란죄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며, 공수처가 주장하는 직권남용죄는 대통령을 대상으로 수사와 소추가 불가능한 범죄다. 설혹 체포영장을 발부받는다 해도 관할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을 피하고 서부지법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것도 이상하다. 공수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고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행위는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사건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탄핵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과 재판관은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애초에 6인의 재판관만 남았을 때,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23조 ①항의 의사정족수 규정(7인의 재판관 참여로 심의 개시)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이 조항은 3권 분립의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의사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6인의 합의로 정지시킬 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헌재는 오직 국회에 국회 몫의 재판관을 추천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경고했어야 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2명의 재판관만 임명했을 때, 헌재는 남은 1명의 조속한 임명을 촉구함과 동시에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기준이 200명이냐 150명이냐를 가장 우선적으로 심의했어야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의 정족수 결정은 이후 벌어질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중립성에 가장 큰 문제는 최근 국회측 대리인이 제시한 '내란죄 철회'다. 내란죄는 탄핵소추의 핵심적 이유였고, 비상계엄은 내란죄의 주요 수단이었다. 그런데 국회측 대리인은 민주당의 당리당략을 반영해 내란죄 철회를 주장하면서 "헌재의 권고에 따라"라고 발언했다.

재판관의 확인 질문과 헌재 사무처장을 비롯한 관계자의 부인 발언으로 수습하려 했지만 한번 입 밖에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사건은 헌재가 민주당과 '협조'하에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짙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의 사법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최종 판결을 통해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사법의 정치화는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다. 사법의 정치화는 국론분열과 갈등을 키워 자칫하면 유혈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정치적 사건들을 맡은 관계자들이 개인적 가치관이나 이념, 정치적 이익에 따라 행동했다는 의혹을 받는 순간, 이 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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