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간 옷 8벌 중 5벌 ‘헌 옷 수도’ 파니파트에서 신호
의류 재활용 산업 침체로 방치·소각 늘고 도시 오염 심화
‘신세계인터내셔널.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소비자 상담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 파니파트시 도심 바르사트로드 인근 공터, 청담동에서 4678㎞ 떨어진 이역만리에서 한글 표시가 선명한 타다 남은 옷가지가 뒹굴고 있었다.
파니파트는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가량 떨어진 인구 60만명 규모의 산업도시다. 전세계에서 연간 10만t의 헌 옷이 수입돼 재활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서, 한겨레 취재팀은 재활용 의류로 수출됐으나 쓰레기로 변한 한국산 옷의 ‘최후’를 목격했다.
한겨레는 2024년 2~8월 헌 옷과 신발·가방에 갤럭시 ‘스마트태그’와 인공위성 기반의 지피에스(GPS·글로벌포지셔닝시스템) 추적기 153개를 달아 전국의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12월12일 기준으로 8개 옷이 인도에서 발견됐고, 이 중 5개가 파니파트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로 간 나머지 3개 중 1개도 파니파트를 거쳐 인도 북부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인도는 2023년 수출 중량 기준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헌 옷을 수출하는 나라(8만422t, 전체 수출량 중 27%)다. 인도로 수출되는 헌 옷 상당수가 파니파트로 향한다는 사실이 추적기로 확인된 셈이다.
2024년 10월25일 오후 5시30분(현지시각) 한겨레가 추적기를 따라 바르사트로드에 들어섰을 때, 아직 햇빛이 남아 있는 시간인데도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어두컴컴했다. 연기의 진원지는 300㎡ 남짓 공터 안 구덩이로, 족히 200㎏은 넘어 보이는 옷 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공터는 타다 남은 옷들의 재와 넝마가 된 옷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구덩이에 묻혀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거나 묻힌 지 오래돼 흙과 함께 바위처럼 단단히 굳은 옷 더미는 거대한 쓰레기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헌 옷의 수도’는 옷들의 무덤이자 장례식장이기도 했다. 공터 구덩이에서 옷 부스러기를 씹어 먹고 있던 8마리 소떼는 기괴한 무덤의 초현실성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이 공터는 공식적으로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니었다. 지도상에는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파니파트 사람들은 이 공터를 ‘덤프야드’(Dumpyard)라고 불렀다. 헌 옷을 수입하는 업자, 헌 옷을 재활용하는 공장들이 남은 옷을 공터에 가져다 놓고 있었다. 재활용 공장이나 가게에서 헌 옷을 받아와 공터에 버리는 일을 하는 트럭 기사 라즈벨(64)이 말했다. “(여기 버려지는 옷들은) 쓰이지 않거나 팔리지 않은 옷들이에요. 대부분 태워요. 시 정부가 옷을 버리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밤에 몰래 버리고 태워버리는 거죠.” 그는 이 도시에 이런 덤프야드가 17개 정도 있다고 했다.
한국 옷, 태우거나 다운사이클링
파니파트로 간 한국의 헌 옷 다섯벌은 모두 스웨터였다. 아크릴, 모, 레이온, 폴리에스터, 나일론 소재다. 소각된다면 탄소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이 옷들은 대체로 국내 헌 옷 수출업체로 향했다가 선박으로 인천항을 떠나 인도 서부를 지나 북부에 있는 파니파트로 향했다.
한겨레 취재팀은 지난해 8월9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의류수거함에 베이지색 스웨터를 버렸다. 중국 저가 플랫폼에서 구매했고, 이른바 ‘브랜드’가 없었다. 스웨터는 한달이 채 되지 않아, 경기도 하남시의 한 창고(수출업체로 추정)로 이동했다. 이후 인천항으로 갔다가 말레이시아 슬랑오르(셀랑고르)주의 클랑항에서 10월 한달가량을 머물렀다. 스웨터는 11월이 되자 인도의 파니파트로 이동했고, 덤프야드와 직선거리로 1㎞도 되지 않는 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파니파트로 간 또 다른 스웨터들 역시 덤프야드와 3㎞ 안팎 거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덤프야드가 아니라 중고시장이나 공장으로 갔더라도, 판매되거나 재활용되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매립·소각지인 덤프야드에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파니파트에는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하루 250t 이상의 헌 옷이 수입돼 밀려 들어온다.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 인도 내에서 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는데,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주로 선진국)의 헌 옷을 수입해 재활용하면서 아시아 최대 섬유 재활용 허브로 부상했다. 이 산업 종사자가 많게는 7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파니파트에 오는 헌 옷은 원칙적으로는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이 목적이다. 수입업자 디판슈(24)는 “한국에서 수출된 옷은 인도 서부 구자라트 항구를 통해서 인도에 들어오고, 화물 열차에 실려서 파니파트에 온다”며 “두달 내지 석달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디판슈처럼 한국과 교역하는 파니파트의 수입업자가 최소 수백명은 된다.
수입된 옷은 일부 소매상에 판매되고 남은 옷은 재활용 공장으로 가지만, 재활용 가치가 없는 옷들은 버려진다. 디판슈는 “한국의 수출업체로부터 산 옷을 싸게는 ㎏당 5루피(86원), 비싼 것들이라도 ㎏당 20루피(344원)에 지역 구제 소매상인이나 재활용 공장에 판다”고 했다. 보통 80㎏ 규모의 큰 묶음으로 거래되는데, 한벌당 가격을 매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헐값에 거래되기 때문에 재활용되지 않는 옷을 버리더라도 수입업자에게는 이윤이 남는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이 ‘원자재’ 형태로 돌아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들을 색깔별로 분류한 뒤, 날카로운 기계에 넣어 잘게 쪼갠다. 이후 표백제로 하얗게 만든다. 잘게 잘리고 표백된 옷들은 실을 뽑아내는 공장으로 이동해 원사(실)가 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원재료보다 낮은 품질의 물건으로 바꾸는 ‘다운사이클링’ 과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 카펫, 커튼, 담요 등이 주로 생산된다.
실제 한국에서 보낸 옷이 다운사이클링 용도로 쓰이는 상황도 포착됐다. 취재팀이 2024년 2월 서울 구로구에 있는 의류수거함에 버린 옷은 경기도 광주시의 한 창고로 옮겨졌다가, 4개월 만인 6월께 파니파트 북서부로 이동했다. 그곳엔 330㎡(약 100평)가 넘는 대형 헌 옷 창고가 있었다. 창고 주인인 가우라브 가르그(36)는 한국 옷을 수입해서 재활용 공장에 넘기는 중간 수입업자였다. “(한국 옷을) 원사로 만드는 공장에 판매하는 거죠. 이 옷들이 다 실을 뽑는 기계로 가는 거예요.”
헌 옷의 수도, 오염으로 망가지다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은 1990년대부터 이 도시를 이끄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연간 3억달러(약 4415억원) 상당의 재활용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헌 옷 수도’로 오랜 기간 기능하며 수질과 대기 오염이 심각해졌다. 우선 공기질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다. 섬유를 소각로에 넣어 연료로 쓰거나 덤프야드 등에서 불법 소각하며 발생한 오염 탓이다. 파니파트의 2024년 12월 기준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24시간 평균 노출 한계인 15㎍/㎥보다 7~10배 이상 높다.
버려진 옷을 활용하는 산업은 주민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리아나주의 2022년 보고서와 지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마을 주민 사이에 최소 35건의 심장마비가 발생했다. 도시의 섬유산업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의 급격한 증가가 원인이다. 대기 중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수록 심장마비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2022, 푸단대) 또한 대기·수질 오염으로 지역에서 폐 질환,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고혈압, 암 등을 앓는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파니파트의 주요 산업 단지에서 반경 5㎞ 이내에 있는 주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구의 약 93%가 지난 5년 동안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헌 옷의 수도 파니파트는 헌 옷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 “패션업은 성장하고 있고, 우리가 쓸 담요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긴 해요. 그런데 그건 우리 건강과 바꾸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아파요.” 파니파트 지역 활동가인 우에메 티아기(49)가 말했다.
주 정부는 도시가 오염으로 엉망이 되는 과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공장의 불법 소각과 폐수 방류를 금지하곤 있지만,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덤프야드에서 만난 트럭 기사 라즈벨은 “사람들도 소각이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덤프야드를 방문한 3일 동안 한번은 방금 소각이 끝난 흔적을 찾았고, 두번은 소각이 진행되고 있었다.
파니파트에 머무른 4일 내내 매캐한 탄내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막대한 헌 옷이 도시로 밀려드는 한 멈추기 어려운 불길이다. 우리가 어디선가 재활용된다고 여기고 버린 헌 옷이 그 불길을 키우는 땔감이 되고 있다.
파니파트(인도)/글 박준용 한겨레21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조윤상 피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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