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저희끼리 먼저 외쳐볼까요? 한덕수는 퇴진하라.”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진 26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옹기종기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바람을 피해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한 줄로 서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집회 개최로 무대 준비가 지연되면서, 마이크도 스피커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입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한덕수는 내란 공범”, “한덕수를 탄핵하라”.
1500여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저녁 7시30분 넘어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서 ‘내란 연장 헌법파괴 한덕수 퇴진 긴급행동’을 열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이 12·3 비상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하기 전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당시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한 대행이 여야 합의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급하게 잡힌 집회였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개최 소식이 알려진 이날 집회에는 2천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
시민들은 양곡관리법 등 국회를 통과한 6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한 대행이 여야 합의를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할 헌법재판관 임명을 늦춘 데 분노했다. 직장인 김도균(25)씨는 “비상계엄 선포는 여야 합의로 했느냐”며 “한덕수가 여야 합의 타령을 하면서 사실상 탄핵과 내란 수사를 방해하고 있어 화가 난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직장인 박아무개씨도 “말이 협력이지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표결을) 안 할 걸 뻔히 알면서 시간 끌기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에 이어 한 대행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독일에서 대학원을 다니다가 2주간 한국에 들렀다는 심미석(25)씨는 “한 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처럼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그 와중에 거부권을 썼다”며 “대행을 하든지 자리만 지키고 있든지 둘 중 하나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원생 홍석윤(24)씨도 “국가 안보나 경제면에서나 현재 상황을 헌법적으로 빠르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현재 여당과 총리는, 사태 수습은 뒷전이고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이어 헌법재판관 선출안 표결까지 불참한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시민들은 거센 비판을 내놨다. 대학생 김예빈(23)씨는 “국회의원 1명당 국민 17만명을 대표한다고 들었는데, 국민의힘 의원이 1명 표결에 불참할 때마다 국민 17만명의 의견이 무시된다”며 “우리들의 의견을 대표하라고 뽑은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는 건, 국민 의견을 대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은 집회를 마친 밤 8시40분께부터 각양각색 응원봉과 깃발 등을 흔들며 경복궁 앞에서 출발해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으로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