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이 텔레그램을 통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집단 성범죄 문제를 “과대평가된 위협” “급발진 젠더팔이”로 몰아가고 있다.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지만, 당 주요 지지층인 ‘2030 남성’들을 의식한 발언만 쏟아낸 것이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 27일 “딥페이크 음란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 불안과 공포를 또다른 젠더갈등의 소재로 악용하는 일부 기회주의자들의 처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허 대표는 “딥페이크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면서도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삼든,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삼든 본질은 ‘범죄’에 있지 특정 성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급발진 젠더팔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다. 혐오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에 대한) 위협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까지 말했다. 이 의원은 같은 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딥페이크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조기에 대책을 세우라는 취지로 말씀하신건 좋지만 한편으론 과잉규제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성의 사진을 넣으면 이를 합성해 나체 사진으로 만드는 불법합성물 제작 프로그램(봇)을 탑재한 텔레그램방 이용자 수가 22만여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위협이 과대평가됐다는 근거로 들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 이용자 수가 22만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진 것은, 우리나라 사람 뿐만 아니라 해외 이용자가 합쳐진 규모라는 취지다. 텔레그램 최고경영자가 올해 초 한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9억명이고, 데이터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300만명이니 텔레그램방 한국인 비율을 따지면, 22만명이 아닌 726명이란 게 이 의원의 계산이다.
이 의원은 회의에 나온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을 향해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다 보니 어떻게라도 방법을 만들기 위해 반농담으로 ‘학교폭력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를 없애는 것’ 이런 식의 대책이 나오면 안 된다”며 “기술적으로 말이 되는 제안이 나와야 될 것 같다”고 주문했다.
두 사람의 발언을 두고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 대표는 불법합성물 제작 텔레그램 방에 참가하는 한국인 인원 수를 산술적으로 계산해 위협이 과대평가됐다고 했지만, 사이버보안업체 ‘시큐리티히어로’가 ‘딥페이크 성적 영상물 전용’ 누리집 상위 10곳과 유튜브, 데일리모션, 비메오 등에 산재한 85개 딥페이크 채널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딥페이크 성적 영상물에 등장하는 인물의 53%가 한국 국적이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딥페이크 피해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피해 재발 방지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과잉 규제’를 먼저 언급하는 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개혁신당을 향해 “인원 수, 젠더갈등을 언급하며 본질을 흐리지 말라. 지금 우리 정치가 서있어야 할 곳은 초국적 거대 기업인 텔레그램의 편이 아니라 피해자의 편”이라며 “프로필 사진을 내리고 계정을 잠그고 사회에 신뢰를 잃고 있는 청소년의 곁”이라고 말했다.
여론과 다소 동떨어진 발언은 당의 주요 지지층인 ‘2030 남성’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가 주로 여성이다 보니, 개혁신당이 주요 지지층인 2030 남성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도적으로 (실제 위협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개혁신당은 4·10 총선 정당 투표에서 3.61%의 지지율을 받았는데, 연령대별 당 지지도 (방송3사 출구조사)를 보면, 20대 이하 남성(16.7%)과 30대 남성(9.5%)이 가장 많은 표를 줬다. 다른 연령대 및 성별에선 2~4%의 지지율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