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에 제동을 걸었다. 투자자와 주주를 위한 정보 제공이 부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저가 논란’을 빚은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 공개매수도 소수 주주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공정 논란을 빚은 두 그룹의 사업 및 지배구조 재편 계획이 당국과 시장으로부터 잇달아 제동이 걸리거나 차질을 빚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은 24일 두산로보틱스에 증권신고서를 정정해서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공시했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의 핵심인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 로보틱스는 앞서 지난 15일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을 위한 증권 신고서를 낸 바 있다. 현행 법령상 투자자 50명 이상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하거나 기존에 발행한 주식을 매도할 경우 발행회사가 투자 판단을 위한 정보를 담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여한 데 따라서다. 금감원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두산 쪽에 투자자와 주주를 위한 충분한 정보를 공시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현재 신고서 내용이 추상적인 만큼 구조 개편의 목적과 효과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분할 합병의 배경과 절차는 물론 이로 인한 수익성, 재무 안정성 등을 구체적으로 담으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감독 당국이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 간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의 목적과 기대 효과 등을 상세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건 드문 일이다.
금감원이 신고서를 반려하고 나선 건,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사업 재편안을 놓고 시장의 논란이 커지고 있는 사정과 무관치 않다. 두산의 재편안은 원전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 부문을 분할해 이를 두산로보틱스에 흡수 합병하고, 현재 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도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바꾼다는 게 뼈대다. 이 과정에서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을 주가가 뻥튀기된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꾸게 돼 불이익을 보게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우량주인 밥캣 지배력이 강화되는 지배주주(지주회사 두산)에게만 좋은 사업 재편이라는 얘기다.
앞서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임죄 혐의가 있어서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손해가 우려되는데도 금감원이 신고서를 수리한다면 금융 당국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이 받게 될 로보틱스 주식이 초고평가 상태지만 주가 하락 위험 등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며 “부실 기재가 자본시장법상 증권신고서의 중요한 사항 누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한화도 한화에너지가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20일간 진행한 한화 주식 공개 매수 결과, 목표 수량이었던 600만주(지분율 8.0%)에 못 미치는 389만8993주(5.2%)가 청약했다고 공시했다. 애초 목표의 65%만 달성한 셈이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김동원·김동선 등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다. 이번 공개 매수를 통해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주식회사 한화의 가족회사 지분율을 높여 3세 승계를 발판으로 삼으려 했으나, 주가 저평가 등을 이유로 일반 주주들이 호응하지 않은 셈이다. 한화그룹 쪽은 한화에너지가 추가 공개매수 계획을 내놓을지에 대해선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