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등교, 폭우에 내려 앉도록 ‘물밑 점검’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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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4. 오후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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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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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아래 교각 파임, 침하 원인 지목
의무 아닌 탓 그동안 수중 점검 없어
지난 10일 차량 통행이 금지된 대전 중구 유천동 유등교 모습. 교량 중간 지점이 내려앉아 있다. 최예린 기자

대전에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10일 이른 아침, 회사원 김기호(44)씨는 출근길에 중구 유천동의 유등교를 지나다 교량 중간 지점의 상판이 내려앉은 걸 발견하고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유등교는 준공한 지 50년도 더 지났지만 2년 전 정밀안전점검과 최근 정기안전점검에서 B등급(양호)을 받은 다리다. 이 때문에 ‘겉으로 멀쩡해도 무너질 수 있는 건가’라는 시민 불안이 커졌다.

대전시가 긴급안전점검을 진행한 결과 유등교의 문제는 물 밖의 상판이나 교각에 있지 않았다. 하천 아래 교각 기둥 부분이 세굴(강물 등에 의해 파이는 현상)로 파여 교량 전체 안정성이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상판이 내려앉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관리 주체인 대전시는 긴급점검 뒤 유등교 안전등급을 E등급(불량)으로 조정했다. 11일부턴 “유등교 추가 침하·붕괴 우려가 있으니 교각 아래쪽 산책로 통행을 절대 금지한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시민들에게 발송하고 있다. 계속 양호하던 다리가 하루 만에 세 등급 아래 ‘붕괴 우려 있는’ 위험 시설물이 된 것이다.

어떻게 대전시는 이런 다리를 양호하다 평가할 수 있었을까? 국토교통부의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실시 등에 관한 지침’을 보면 1종 하천교량은 하천준설·홍수·교량확장·철도공사 등 상황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수중 조사’를 해야 하지만, 유등교처럼 2종이거나 3종 시설물인 하천교량은 안전점검 때도 수중 조사는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이를 핑계로 대전시는 지금까지 2·3종 교량에 대한 수중 조사를 한 적이 없다.

지난 10일 차량 통행이 금지된 대전 중구 유천동 유등교 모습. 교량 중간 지점이 내려앉아 있다. 최예린 기자

대전시 관계자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2·3종 교량은 그동안 안전점검 때 물밑까지 살펴보지 않은 것으로 안다. 눈으로 보이는 물 위쪽 교량에선 별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B등급을 줬던 것”이라며 “전국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가 관리하는 162개 교량 중 70% 정도(113개)는 수중 조사를 한 적이 없는 2·3종 시설물이다. 전국적으로도 전체 관리 교량(3만4506개)의 약 85%(2만9421개)가 2·3종 시설물로 분류돼 있다. 2·3종 하천교량의 ‘물 밑 안정성’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그 문제가 유등교 침하를 통해 ‘운 좋게’(?) 미리 드러난 것이다.

유등교가 있는 대전 중구를 지역구로 둔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일환 국토안전관리원장에게 “선택 사항인 수중침하 측정을 의무 사항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김 원장은 “기후변화 등으로 환경적 요인이 크게 바뀔 수 있어 이런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문봉섭 국토부 시설안전과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육안으로만 안전점검을 하면 수중의 세굴 정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던 건 맞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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