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디즈니가 마블 영화에 19금 욕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알(R)등급(청소년관람불가)을 허락했을까. 데드풀이 주특기인 제4의 벽(영화와 현실의 경계)을 뚫고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디즈니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맛이 간 엠시유(MCU: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되살리는데 계속 실패했다. 그리고 마침내 데드풀의 입, 감독과 작가와 마블스튜디오와 모회사 디즈니와 전 소속사였던 20세기폭스까지 시원하게 갈아 마시는 그의 드립력을 마지막 심폐소생술로 선택했다.
24일 개봉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엠시유 페이즈5의 4번째 영화다. 이 작품에는 죽어가는 엠시유의 소생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졌다. 디즈니의 재정을 휘청이게 만든 20세기폭스 인수 이후 첫 과제, 폭스가 만들어온 엑스맨 시리즈와 엠시유의 세계관 통합이다. 이미 난마처럼 얽힌 마블의 멀티버스와 캐릭터들을 정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엑스맨 유니버스까지 들이부어야 하는데 데드풀의 활용은 신의 한수였다. 정교하고 복잡한 설계도를 짜는 게 아니라 “폭스 꺼져, 나 디즈니랜드 간다” 깐족이고 불필요한 캐릭터들은 “망해서 죽였어요”하면 끝. 여기에 엑스맨 유니버스 최고 캐릭터인 울버린까지 되살려왔으니 데드풀에게 앞으로 제작될 어벤져스의 두둑한 지분을 선물해 마땅한 연착륙이다.
영화는 ‘로건’ (2017) 마지막을 장식했던 울버린(휴 잭맨)의 무덤에서 시작된다. 절박하게 무덤을 파면서 울버린이 죽지 않았길 기대하는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을 기다리는 건 해골뿐이다. 이어 시간변동관리국(TVA)의 전투병들이 몰려오자 그는 아다만티움과 합성된 울버린 뼈 206개를 하나하나 분리해 이들을 물리친다. 대사뿐 아니라 액션도 확실히 19금(사체 훼손)을 보여주며 포문을 여는 것.
어벤져스 취직도, 엑스맨 세계 진입도 실패하고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웨이드(데드풀)는 시간변동관리국에 끌려가 자신과 친구들이 사는 우주가 소멸할 것이라는 협박을 듣는다. 그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하는 족족 실패하는” 마블의 멀티버스를 비꼬면서도 멀티버스로 들어가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울버린을 끌고 나온다. 상극인 두 사람은 팀을 이뤄 자신이 살아가는 보이드 말고는 모든 시간선을 없애버리려는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와 대결한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엠시유와 엑스맨 유니버스의 어떤 캐릭터들이 등장하는가다. 영화는 이에 대해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내보인다. 깨알 웃음을 쏟아내는 카메오 군단부터 ‘설마 이 영화까지?’ 싶은 과거 작품의 캐릭터들이 조역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준다. 카메오의 압권은 엠시유와 엑스맨 유니버스에 모두 참여했던 배우. 마블의 “백인 남성 대리 만족 원탑” 캐릭터인 줄 알고 좋아라하다 그가 입은 수트 로고를 보고 실망하는 데드풀의 표정과 품위의 상징이던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쌍욕 퍼레이드가 세계관 통합의 현기증나는 즐거움을 준다. 대놓고 매드맥스 시리즈를 베끼면서 “퓨리오사~”를 외치는 등 패러디의 재미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데드풀 시리즈의 아쉬운 점인 임팩트가 크지 않은 액션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한 편. 찰스 자비에의 쌍둥이 남매로 엄청난 능력을 갖춘 카산드라와 싸우는 스케일 큰 액션보다 9인승 승합차 안에서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싸움을 벌이는 액션이 보는 재미가 훨씬 크다.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흥행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