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영상 틀자 눈물과 울분…고통 속 법정 지킨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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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4. 오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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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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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 함께 지켜본 ‘이태원 재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에 대한 1심 마지막 공판이 열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사전 예방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내용의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시시티브이(CCTV)를 보면 22시10분 군중이 정지해 있다가 뒤에서 강하게 밀어내는, 티(T) 존 방향으로 (시민이) 밀려가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된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에 대한 선고 전 마지막 공판기일이 열린 지난 22일, 법정에는 2022년 10월29일 참사 직전 영상이 재생됐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쪽 변호인이 “(참사는) 다른 사람이 밀어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가져온 영상이다.

손수건을 한손에 꼭 쥔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박영수(고 이남훈씨 어머니)씨는 영상이 재생된 순간 참지 못하고 법정을 뛰쳐나가 한참을 울었다. “화면 어딘가에 아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때를 회상하고, 관련된 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공간 자체가 힘들죠.” 박씨는 이내 눈물을 닦고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참사 재판에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한겨레는 이날 박씨와 동행하며, 유가족의 눈에 비친 이태원 재판을 살폈다.

재판을 방청하는 유가족은 전날부터 긴장 상태다. 박씨는 “법정에선 (발언 기회가 없으면) 항변을 못 하니 피고인들이 변호하는 내용을 들으며 소리 없이 울분을 토하는 가족들이 많다. 힘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아침 마음을 다잡고 서울 중구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을 나선 박씨는 재판이 열릴 서울 서부지법 앞에 섰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왜 인파 대책 안 세웠나’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같은 유가족끼리는 아픈 마음 잘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 어떻게든 시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커서요.”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 심리로 진행된 이 날 결심공판은 이임재 전 서장 쪽 변호인단이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방청석에서 조용히 진술을 듣던 유가족이 술렁인 건 이 전 서장의 한 변호인이 사고 현장이 담긴 시시티브이 영상을 내보였을 때다. 유가족은 ‘어휴’라는 한숨 소리를 내거나 손수건을 눈가에 대고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변호인이 이번 참사는 ‘다른 사람의 미는 행위 때문에’ 발생했다는 내용의 주장을 펴자, 유가족들은 참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고함쳤다. 다른 유가족처럼 눈물로 눈가가 얼룩진 박씨는 “마치 (피해자들이) 무질서한 행동을 해서 참사가 일어났다는 주장 아닌가. 2차 가해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전 서장이 피고인신문과 최후진술을 할 땐 “복잡한 심경”이라고 했다. 이 전 서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살인적인 업무량에 모든 직원이 식사도 굶어가며 일했다”고 말했다. “경찰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모든 비판과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모든 걸 다 내려놓겠다”고 말할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씨는 “이 전 서장도 ‘사람이었구나’ 싶어, 그 말이 진심이길 바랐다. 처음으로 (사과가 마음에) 와 닿았다”라면서도 “결국 대통령 안위를 위해 159명의 목숨을 바꿨다는 변명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10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날 재판이 끝날 무렵, 박씨에게 발언 기회가 왔다. 전날 밤 여러 번 살펴본 마지막 발언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재판부 앞에서 읽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제 손주들에겐 우리나라에 대한 ‘불신’이 아닌, 우리나라의 한 시민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검찰은 이날 이 전 서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9월3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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