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상 최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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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3. 오후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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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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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가 19일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한국의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상 가장 큰 참사입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69) 목사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벌어진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목사는 “이번 사건은 150만 이주노동자를 한국의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 고정해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착취하는, 약탈적인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과 같은 이주민 정책은 우리 사회에 큰 불행을 안길 것”이라고 경고하는 김 목사를 9일 경기도 포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주종관계’ 만든 고용허가제와 침묵 당한 이주노동자

김 목사는 이주민 단체 활동가 중에서도 손에 꼽는 산업재해(산재) 전문가다. 포천을 중심으로 경기북부에서 주로 활동한다. 노동선교와 일반교회 사역을 거쳐 2017년부터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는 그는 산재 지정병원에서 이주민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김 목사는 “2012년 포천에 온 뒤 주말마다 거리를 가득 채우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관심을 갖고 시작했고, 2018년에는 센터 설립을 준비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며 “이주노동자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차에 찾은 곳이 포천에 있는 산재 지정병원이었다”고 돌아봤다.

병원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은 김 목사의 상상 이상이었다. 손가락이 잘리고 허리가 부러지는 등 갖가지 산재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김 목사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나다 보니 마음을 쉽게 열었지만, 대화를 해보면 산재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며 “그때부터 상담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매일 병원으로 출근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설득해 산재 신청을 하자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주노동자 일부는 산재 신청을 했지만, 상당수는 다음날 갑자기 말을 바꿨다. 이주노동자가 침묵하는 원인을 밝히려고 애쓰던 김 목사는 “고용허가제가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 목사는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있고, 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꿀 자유조차 박탈하는 제도가 고용허가제”라며 “결국 이주노동자와 사업주의 관계가 철저한 주종관계다 보니, 사장이 얼굴만 찡그려도 노동자는 침묵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왼쪽 넷째)가 지난겨울 경기북부의 한 채소 농장에 있는 불법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이주민과의 밥상 나눔 모임인 ‘밥상 코이노니아’를 진행하고 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법과 제도로 쌓아 올린 차별…한국의 이주민 사회는 “내부식민지”

김 목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주종관계가 일터의 위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인간으로서 기본권인 산재 신청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에 대해 노동자들이 감히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선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겠냐”며 “위험이 있어도 말할 사람이 없다 보니 사업주들은 그런 환경을 개선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고 결국엔 사고가 터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가 “내가 만난 산재 피해자들이 겪은 사고는 모두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도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안전을 생각하는 나라나 사업주는 리튬전지 공장 작업장을 1층에만 둔다고 한다”며 “아리셀은 작업장을 2층까지 뒀을 뿐더러, 2층에 이주노동자를 집중적으로 배치했고 그중에서도 일용직 단기직을 많이 뒀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주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거나 공장 구조를 알고 있었겠느냐”며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그들을 위험으로 내몬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 목사는 이런 차별이 법과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 사회는 사실상의 내부식민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2021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위헌소송에 대해 재판관이 7대 2로 합헌 판결을 내린 사례를 들었다. 김 목사는 “10년 전에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하면서 ‘국익’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번에는 합헌 결정을 하면서 ‘사업주들이 외국인 노동력을 원활하게 공급받고 원활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며 “국민의 인권지수는 향상됐는데 헌법재판소는 더 노골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역행한 것”이라고 했다.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4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영정과 위패를 모시며 오열하고 있다. 아리셀은 외국인 사망자의 경우 비자 종류, 체류 기간 등에 따라 배상액을 다르게 산정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한 상태다. 연합뉴스

이주민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불평등 구조부터 바꾸자”

해법이 있을까. 김 목사는 이주민 문제가 결국 한국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도, 내국인도 노동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라며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면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도 함께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지금의 한국처럼 1대99의 착취구조는 그대로 두고 외국인 인력만 무분별하게 받겠다는 정책은 우리 사회에 큰 불행을 안길 것”이라며 “재벌을 위한 착취공장인 현실을 바꾸면서 장기적인 로드맵으로 이주민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정반대의 정책만 펼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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