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유머 사이 진폭 놀라워…날라차기 못 잊어”
“매 작품 황홀…‘우나기’ 장면 그만 할 수 있는 연기”
“영화 속 나뭇잎 사이로 무심하게 빛나는 한 줄기 햇살처럼 야쿠쇼 고지라는 위대한 배우의 깊이는 가늠할 길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퍼펙트 데이즈’와 함께 한 여정의 끝을 송강호 배우와 함께하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 영화를 봉준호 감독이 찍었다면 히라야마는 송강호 배우가 연기했을 텐데 제가 먼저 해서 이겼네요.” (웃음)
한국과 일본의 대표 남자배우가 만났다. 2022년 ‘브로커’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57)와 2023년 ‘퍼펙트 데이즈’로 같은 상을 받은 야쿠쇼 고지(68)가 21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두 배우의 두번째 만남이었다.
야쿠쇼 고지는 “안녕하세요? 송강호데스(입니다)”라는 첫인사로 송강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고 송강호는 “곤니치와, 야쿠쇼 고지데스”라고 화답했다.
‘퍼펙트 데이즈’ 한국 개봉을 기념해 15년 만에 내한한 야쿠쇼 고지는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도쿄의 화장실을 무대로 청소부가 등장하는 프로젝트라는 기획에 매력을 느껴 참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단편영화와 사진집 제작으로 추진되던 프로젝트에 빔 벤더스 감독이 합류하면서 장편 기획으로 바뀌게 됐다”고.
송강호는 ‘퍼펙트 데이즈’처럼 자신의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봉준호 감독이 “굳이 나를 촬영 현장 밖으로 따로 불러서 귓속말로 연기 주문을 했다”고 회고하면서 대사 없이 4분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찍기 전 빔 벤더스 감독에게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질문했다. 야쿠쇼 고지는 “4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면서 스크린에 내 얼굴이 이렇게 오랫동안 크게 비치는 건 처음 봤다”고 연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 “대본에는 백미러로 비치는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것 같다. 그런데 슬프지는 않은 것 같다고 시적으로 적혀 있었다. 실제로도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을 들으면서 음악에 영감 받으며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퍼펙트 데이즈’의 명장면으로 간소하고 단순한 삶을 이어가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에게 조카가 찾아오고 이를 통해 오랜만에 여동생과 만나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어둑한 밤에 고급 차를 타고 온 여동생이 조카와 함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회한에 차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면서 “야쿠쇼 고지의 절제된 감정 연기 덕에 히라야마의 삶 전체와 영화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공통점과 함께 외국인 감독과 자국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독특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퍼펙트 데이즈’를 연출한 빔 벤더스는 독일인이다. 송강호의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에서 연출한 작품이다. 야쿠쇼 고지는 “작품이 언제 개봉할 수 있을지 어디서 배급할지 결정된 게 없는 상태에서 찍었음에도 영화를 만드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배우는 경험이었다”면서 “빔 벤더스 감독의 일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일본인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고 했다.
송강호의 출연작을 ‘쉬리’때부터 눈여겨봤다는 야쿠쇼 고지는 ‘살인의 추억’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영화 자체도 충격일 정도로 좋았지만 송강호 배우가 날아 차기 할 때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물론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캐릭터였지만”이라고 웃으면서 “송강호 배우는 어떤 캐릭터이든 그 인물이 진짜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리얼리티와 함께 유머와 진지함 사이의 놀라운 진폭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배우”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날 야쿠쇼 고지가 출연한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에서 야쿠쇼의 복장을 흉내 내 옷차림까지 신경 쓰고 온 송강호는 “매 작품 황홀할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셔서 어느 한 작품을 꼽기가 힘들지만 요즘도 가끔 봉준호 감독과 ‘우나기’에서 아내를 죽이고 피투성이로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로 자수하러 가던 모습을 이야기하며 그 연기를 할 수있는 건 야쿠쇼 고지밖에 없다고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야쿠쇼 고지는 호소다 마모루와 봉준호 감독의 대담에서 봉 감독이 자신을 캐스팅하면 유명한 만화가의 늙은 조수로 구박당하는 캐릭터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 영화를 찍게 되면 “송강호씨가 꼭 나를 구박하는 만화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며 웃었다. 송강호는 “‘‘퍼펙트 데이즈’와 오늘 대화를 통해 영화와 인생에는 완성이 없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 야쿠쇼 고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