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받아 지배주주 퍼주는 한화·두산·SK…이게 ‘밸류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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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9. 오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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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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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두산·SK 잇단 구조개편 논란…정부 방관 속 ‘밸류다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제도 폐지 등 ‘밸류업 세제 지원’을 다수 포함시켰다. 연합뉴스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화·두산·에스케이(SK) 등 정부 지원의 수혜를 톡톡히 받은 주요 그룹들이 주주 가치에 역행하는 사업·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일제히 추진하고 나서서다. 주주들은 밸류업 아닌 ‘밸류다운’(가치 저하)이라고 반발하지만, 정작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에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 그룹이 줄줄이 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건, 공교롭게도 정부가 밸류업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한 이달 3일 직후다. 먼저 포문을 연 건 한화다. 한화에너지는 지난 5일 “주식회사 한화의 지분 8.0%(600만주)를 주당 3만원에 공개 매수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실질적 지주회사인 한화 일반 주주들의 지분을 장외에서 사들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아들 삼형제의 승계를 위한 절차로 시장은 바라본다. 한화에너지가 김동관·김동원·김동선 등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이기 때문이다. 한화에너지는 과거 한화의 정보사업 부문을 분사해 그룹 계열사들의 정보사업 및 에너지 공급 일감 등으로 토대로 성장한 회사다. 김 회장의 한화 지분(22.65%) 증여 대신, 삼형제가 지배하는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을 기존 9.7%에서 17.71%로 확대해 3세 승계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문제는 공개 매수 대상인 주식회사 한화의 주가가 순자산가치(자기자본)의 4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총수 일가는 가족회사를 동원해 적은 비용으로 지배력을 확대하고, 일반 주주들은 이들을 견제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한화 쪽은 “한화에너지의 주식회사 한화 주식 매수가격인 주당 3만원은 7월4일 종가(주당 2만7850원)보다 7.72% 높은 금액”이라고 했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건 두산그룹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은 분할 합병, 주식 교환 등을 거쳐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알짜 회사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11일 공시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밥캣의 기존 주주들은 보유 주식 1주당 로보틱스 신주 0.63주를 받는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매출액은 두산밥캣이 약 10조3천억원으로 두산로보틱스(530억원)의 200배에 이르지만,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워낙 고평가된 까닭에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주식 교환 가격이 로보틱스 쪽에 유리하게 정해진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두산그룹을 지배하는) 주식회사 두산이 우량기업인 밥캣 지배력을 강화하고 로보틱스에 대한 지원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배주주 만을 위한 밸류업’이라는 얘기다.

전날 비상장 기업인 에스케이이엔에스(SK E&S) 흡수 합병 계획을 발표한 에스케이이노베이션도 사정이 비슷하다. 현행 자본시장법령상 상장사가 비상장기업과 합병할 경우 최근 주가(주당 11만2396원) 또는 장부상의 순자산가치(주당 24만5405원) 중 하나를 기준으로 주당 가치(합병가액)를 정할 수 있는데, 금액이 낮은 주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일반 주주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의미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같은 그룹 내 계열사 간 합병가액을 정할 때 지금처럼 시가(주가)가 아닌 독립된 외부기관이 평가한 공정가치를 기준으로 하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며 “상장사의 지배주주를 위한 이해 충돌 거래를 방지하고 일반 주주들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를 부여하는 상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 움직임은 반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 추진 여부를 두고 “기업하는 분들이 걱정하는 결론을 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업 입장에서 구조 개편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기업이 주주 보호를 잘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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