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은 왜 궁궐 담장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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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상배 ㅣ 서울역사편찬원장

서울시립대 박물관이 소장한 1890년대 경희궁의 모습 작품. 1617년 착공해 3년 만에 완공된 경희궁은 1865년 시작된 경복궁 중건에 쓰기 위해 전각 등이 해체돼 숭정전, 자정전, 회상전 등만 남았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를 지나며 남아 있던 건물은 민간에 매각되거나 이전되며 뿔뿔이 흩어져 없어졌다. 서울시는 이 경희궁 일대에 서울광장의 10배 규모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공


조선시대 궁궐에는 대부분 담장이 있어 공간적 영역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높은 궁궐 담장은 우리에게 궁궐을 경외의 공간으로, 때로는 호기심의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데 유독 경희궁만 궁궐 담장이 없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궁궐의 공간인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것은 경희궁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조선시대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중 하나인 경희궁은 임진왜란 이후인 1617년 착공해 3년 만에 완공했다. 처음에는 이곳의 행정구역인 여경방(餘慶坊)의 ‘경’ 자를 따서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렀으나 1760년에는 경덕궁의 이름이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시호인 ‘경덕인헌정목장효대왕’(慶德仁憲靖穆章孝大王)과 ‘경덕’ 두 글자가 겹친다는 이유로 경희궁으로 고쳤다.

경희궁을 주로 활용한 왕은 숙종과 영조다. 숙종은 정치적 변화를 꾀할 때마다 경희궁으로 자주 옮겼다. 영조는 52년의 재위 동안 3분의 1이 넘는 시간을 경희궁에서 국정을 운영했고, 그 결과 경희궁의 위상을 창덕궁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경희궁에서 생활하며 왕세손으로 자랐고, 영조 승하 후에는 이곳에서 즉위했다.

이런 경희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고종 때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1865년에 급히 중건하면서 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정부가 경희궁 전각을 해체한 뒤 그 목재와 주초석, 잡석 등을 경복궁 중건에 사용했다. 이때 경희궁의 중심 건물인 숭정전, 자정전, 회상전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경희궁의 빈 공간은 왕실의 토지로 분배돼 누에를 치는 양잠소로 활용됐고, 때로는 대규모 국가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나마 몇 개 남아 있던 전각들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모두 사라졌다. 1910년에는 일제가 서대문 밖에 있던 경성중학교를 경희궁 자리로 신축·이전했고, 1920년대를 지나며 남아 있던 건물은 민간에 매각되거나 이전되며 뿔뿔이 흩어져 없어졌다. 그 자리에 일본인 학교와 조선총독부 관사가 들어섰다. 과거의 찬란했던 궁궐이 일본인 교사와 학생들의 활동 무대가 된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광복 뒤 경성중학교는 서울중·고등학교로 개명한 뒤 1980년 서초동으로 이전했고, 이 부지를 서울시가 매입해 ‘사적’으로 지정했다.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던 곳은 지금 일반인 주택이 들어섰다. 정부는 1994년 숭정전과 숭정문 복원을 시작으로 주변 전각인 자정전·자정문·태령전 등을 차례로 복원했으나 나머지 경희궁의 전각들은 복원이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앞 도로는 한양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 자리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역사관에는 경희궁의 궁궐 담장 유구가 있다. 민간 주택가에도 경희궁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소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을 활용해 경희궁을 찾는 시민들이 궁궐 영역을 느끼게 한다면 어떨까?

최근 서울시는 사대문 안 구도심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켜 서울을 품격 있는 도시로 디자인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대문 안 역사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경희궁의 영역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하고 녹지가 어우러지는 도심 공간으로 주변을 정비하고 가꾸는 작업도 필요하다. 물론 많은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역사와 교통, 도시계획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시대에 맞춰 공간의 목적과 용도가 변하듯이, 역사성을 간직한 경희궁 공간은 이제 새로운 변화의 시점에 놓여 있다. 이 일대가 충분한 검토를 거쳐 체계적 장기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향후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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