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절망해야 혁명을 꿈꾸게 되는가 [김탁환 칼럼]

입력
수정2024.07.09. 오후 7:26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회생하기 위해선, 섣불리 답을 내놓기보단 절망의 두께를 재는 것부터 필요하다. 불편하고 부끄럽고 아프더라도, 절망이 켜켜이 쌓인 과정과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이유를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확인해야 한다.
2016년 12월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채 촛불을 들고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김탁환 | 소설가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화두는 무엇인가.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문제를 풀기 전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다. 희망을 가린 거대한 장벽이고 일상을 어지럽히는 탁한 늪이다. 인생의 질문을 쥐고 최소한 3년을 고민한 후 자신만의 문장으로 답을 쓴 이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다. 그에게 장편소설은 화두를 천일 넘게 매일 떠올리며 길을 찾는 예술이었다.

나 역시 먼저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풀기 위해 소설에 등장할 인간과 시간과 공간을 고른다. 적어도 일년은 인생의 질문을 벼리고 다듬는다. 화두가 무엇이냐에 따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결정될 뿐만 아니라, 사건과 갈등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집필하는 동안 가까이 두고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저자들도 그 난제를 먼저 해결하고자 덤벼든 이들이다.

인간은 얼마나 절망해야 혁명을 꿈꾸게 되는가. 삼봉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장편을 쓸 때 품었던 질문이다. 태어나자마자 혁명을 꿈꾸는 이는 없다. 그 사회의 법과 제도 안에서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며 꿈을 펼치고자 노력한다.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하며 실패하고 좌절한다. 추락을 거듭하며 절망이 바닥을 친 후 도저히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렵겠다고 확신하는 순간, 인간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 정도전도 홍경래도 전봉준도 지옥 같은 나날을 통과하고 나서 비로소 혁명가가 되었다. 내가 혁명가의 빛나는 이상과 치밀한 논리와 용맹한 자세보다 절망의 두께에 천착하는 이유다.

2017년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것은 국정농단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2014년 봄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2015년 여름 메르스 사태를 지나는 동안 절망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고스란히 축적된 고통과 슬픔과 분노가 촛불혁명으로 폭발한 것이다. 2024년 7월 현재 절망의 두께는 얼마나 될까.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우선 눈에 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그 가을과 겨울을 지나 2023년부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의 광풍이 몰아쳤으며, 7월에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이 터졌다. 피해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지만,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섬진강 들녘에 살며 체감하는 지방 농촌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지방 소멸, 농촌 소멸, 벼농사 소멸, 마을공동체 소멸의 흐름은 매우 가파르다. 소멸에 맞서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하던 움직임도 대폭 줄어들었다. 마을마다 빈집은 많고, 올해부턴 단기간이라도 귀촌의 문을 두드리던 젊은이들마저 찾아보기 힘들다.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사회안전망이 미흡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런 사회에선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목소리 또한 여전히 높다. 그때그때 들려오는 것은 변명이나 남 탓이고,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들 역시 미봉책이 대부분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을 이번엔 대폭 삭감하더니 다음엔 늘리겠다 하고, 지식정보 사회를 선도하겠다면서도 서점과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멈추고 예산을 없앴다. 갈팡질팡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인적 드문 농촌 지역에 쓰레기를 몰래 갖다버린 후 겉흙을 덮고 달아나는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오물과 악취가 가득 찼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절망은 미사여구로 숨기고 가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방치된 절망은 오랜 기간 더 넓고 깊게 스며, 한 사람을 괴롭히고 한 마을을 부수고 한 나라를 뒤흔든다. 할아버지도 불행하고 아버지도 불행하고 아들도 불행한, 할머니도 억울하고 어머니도 억울하고 딸도 억울한 역사의 암흑기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때를 살아낸 절통한 마음이 바로 한(恨)이다.

감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회생하기 위해선, 섣불리 답을 내놓기보단 절망의 두께를 재는 것부터 필요하다. 불편하고 부끄럽고 아프더라도, 절망이 켜켜이 쌓인 과정과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이유를 공공의 영역에서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확인해야 한다. 민의를 따른다는 정치가들이 진지하게 가늠할 것이 절망의 두께 외에 무엇이겠는가.

인생의 질문을 장편으로 풀고 나면, 새로운 화두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년, 해결은 되지 않고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와 쌓이기만 한 것들을 모조리 꺼내 보자. 한 많은 이 세상을 견딘 사람들이 지금 쥐기 시작한 화두는 무엇일까. 이 땅의 예술가들은 또 무슨 작품으로 그 인생의 질문에 동참할까.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