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으로서의 정치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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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후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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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막스 베버가 1919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대학 강연에서 강조한 정치 지도자의 세 자질은 열정, 통찰력, 책임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열정은 종종 지대추구형 자본주의의 핵심 기득권 세력 보호에 집중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소상공인 대책은 적어도 발표상으로는 그가 현금 살포라 폄훼한 민생회복지원금 13조원의 무려 두배 가까운 25조원에 이르는데, 주로 대출을 만기연장하고 대환대출 지원 대상을 확대하며 신용평가를 완화하여 자금 조달을 돕는 조치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소상공인의 큰 애로사항인 임대료와 독과점 플랫폼의 높은 수수료, 매출 부진 등의 문제 해결에까지는 열정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이 정책의 최종 수혜자에는 이자수익을 지킨 은행과 지대를 계속 받을 수 있는 건물주도 포함된다.

이런 대출 살포는 소상공인 대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신생아 특례대출 등으로 가계대출이 최근 크게 폭증했는데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이 연기됐다. 가계부채 관리보다 부동산 사업자 보호를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부실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지 않고 더 많은 대출만 남발하는 것일까? 국민 경제를 지키는 것보다 토건 기득권이 더 중요한가? 이런 와중에 상속세까지 낮추면 현 정부 들어 더욱 건전하지 못해진 재정은 부자 아닌 대다수 국민이 더 힘들게 책임져야만 하는가?

윤 대통령의 경우, 통찰력이 발휘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저출생 문제도 관료에게 떠넘겼다. 정치경제적 맥락이 완전히 달랐던 1960~70년대에 많은 부작용을 동반했던 급격한 경제 성장의 경험에 기대어 만든 인구전략기획부가 과연 현재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베버는 저서 ‘경제와 사회’에서 관료제의 본질을 예측 가능성으로 파악했다. 관료는 그 어떤 궁극적이며 본질적인 목적 추구에 대한 책무감 없이 관료제가 부과하는 의무에 충실한 집단이다. 혁신적인 해결 방식과 그것이 유발할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은 안정적인 현상 유지에 적합한 특성일 뿐, 결코 유례없이 심각한 새로운 사회현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정치가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정치가는 관료가 놓치는 정책의 이면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산정 기준에는 비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현재의 최저임금은 이에도 현저히 못 미치지만, 살아 숨 쉬는 현실의 노동자가 부양가족이 없는 단신이라는 가정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는 최저임금 노동자는 결혼도 하지 말고, 아이를 갖지도 말라는 정부의 숨겨진 메시지로 작동한다. 신혼부부, 신생아 대출은 어떠한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자마자 집을 대출받아 살 형편이 안 되는 청년은 결혼도, 아이도 꿈꾸지 말라는 말을 은밀하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과 출산 기피 사유로 항상 맨 앞에 등장하는 집값 논란은 정부에 의해 유도된 결과가 아닐까? 이것도 음모론인가?

“왜소한 자리에 집착하면서 조금 큰 자리를 노리는 그런 기계 같은 인간으로만 세상이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우려한 베버가 정치가의 자질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책임감이다. 대의에 대한 책임감이 정치가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주도해야 한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에 의지하며 권력의 특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작업’이 횡행하는 정치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지난한 과정은 경시되기 마련이다. ‘작업’으로서의 정치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충실한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을 거부하지 말고 수용하든지, 아니면 국민에게 “희망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냉혹하고 더러운 현실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통찰력을 가지고 단단한 판자에 천천히, 하지만 강하게 구멍을 낼 수 있는,” 정치에의 천직을 가진 사람을 찾아 선택할 기회가 다시 생기든지, 이 둘 중 하나는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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