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에 한국군이 들이닥쳤다”…50년 넘게 받지 못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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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4. 오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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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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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보통의사건
하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씨 모습. 한베평화재단 제공

첫번째 수류탄에 작은어머니와 사촌 동생이 죽었다. 두번째 수류탄은 어머니와 남동생을 향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8살 남동생은 한쪽 다리가 잘려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죽었다. 1968년 2월24일, 당시 11살이던 응우옌티탄(67)의 가족 5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벌어진 ‘하미 학살’ 사건의 피해 생존자이자 유족이다.

응우옌티탄은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옆구리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몸에 남은 상처보다 더 오랜 시간 응우옌티탄을 괴롭힌 건 머리에 생생하게 각인된 그날의 풍경이다.

당시 하미마을에 들이닥친 건 한국군 해병대였다. ‘파월한국군전사’ 등 자료를 보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 해병제2여단은 1968년 1월30일부터 2월28일까지 ‘괴룡1호 작전’을 펼쳤다. 2월24일에는 하미마을을 수색하고, 민간인인 마을 주민들을 서너 군데로 모이게 한 다음 총격을 가하거나 수류탄을 터트리는 방법으로 151명을 살해했다. 주민들은 군인 철수 이후 부상자를 후송하고 주검을 수습해 가묘를 만들었지만, 군인들은 불도저를 동원해 가묘를 밀어버렸다. 당시 학살된 151명 중 10살 이하 어린이가 48명, 여성이 100명에 달했다. 이름을 아직 가지지 못한 무명의 아이도 3명 있었다.

“세월이 50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동안 제가 했거나 하는 투쟁의 결과에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

2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응우옌티탄이 말했다. 한국 법원이 최근 “외국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한 소감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달 25일 응우옌티탄을 포함한 하미 학살 피해자 5명이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하미 학살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으나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조사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이들의 소송에서 재판부 역시 진실화해위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응우옌티탄 등은 지난 2022년 4월 진실화해위에 하미 학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회복 조처 △베트남전 역사 기록에 하미 학살 관련 내용 추가 △평화인권교육 강화 권고 등이 필요하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과거 자신과 하미마을이 겪은 고통 해결의 첫 걸음이 한국 정부의 진실규명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전쟁 시에 발생한 사건으로까지 확대하여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하는 ‘1945년 8월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에 하미 학살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 역시 진실화해위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며 “원고들의 주장에 의할 경우 피고의 진실규명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어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권리구제 등을 신청할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매우 불합리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면 그 일이 어디서 벌어졌든지 마땅히 그들 스스로가 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응우옌티탄은 한국 법원의 판단이 “실망스럽다”고 표현했다. 응우옌티탄을 포함한 원고들은 하미학살이 ‘권위주의 통치 시’였던 1968년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과거사정리법에 신청자 자격을 대한민국 국적자로 한정하거나 조사대상 사건을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한정하거나 전쟁 시 발생한 사건을 조사대상에서 배제하는 규정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발생 장소, 피해자의 국적, 전시를 제한한다는 규정이 없으므로 하미 학살을 과거사 진실규명 대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권리구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번 재판부의 판단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원고를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학살은 대체로 증거를 남겨놓지 않는다. 언어, 지리적 장벽, 증명책임 등을 넘어 대한민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도 소송 제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진실 규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인근 마을인 퐁니마을에서 자행된 베트남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긴 했지만, 정부는 “학살 사실 자체가 없다”며 항소를 제기하며 여전히 다투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이 소송의 또 다른 원고인 응우옌티본씨가 항소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응우옌티탄을 비롯한 원고들은 한국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진실 규명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3일 1심 선고에 대한 항소장을 대한민국 법원에 제출했다.

“제게 유일한 걱정은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두려운 것은 제가 죽은 뒤에도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세상입니다. 국방부 등 한국 정부 기관의 인정과 사죄의 말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 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다시 한번 한국 법원에 기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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