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고령 리스크’를 고스란히 드러낸 조 바이든 대통령(81)을 대선 후보에서 교체하자는 요구가 민주당 주요 지지자들과 주류 언론에서 분출하고 있다. 사실상 후보로 확정돼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을 후보에서 바꾸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여론의 향방이 변수가 될 수 있다.
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에서 민주당 거액 기부자들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인지력 문제까지 드러낸 바이든의 상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는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벤처기업 유명 투자가인 로널드 콘웨이,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린 파월 잡스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민주당 기부자들은 지난 27일 열렸던 대선 후보 토론 뒤 서로 전화, 메시지, 전자우편 등을 교환하며 후보 교체 등의 대책을 논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바이든에게 대통령 후보 사퇴를 설득할 수 있는 인물로 지목되는 부인 질 바이든에게 누가 접촉할 것인가도 논의했다고 이 대화에 참여한 인사의 말을 빌려 신문은 전했다. 주류 언론이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뉴욕타임스는 28일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사설을 실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점화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험”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오는 11월 대선에서 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미국인들이 바이든의 나이와 쇠약함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눈감아주거나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길 희망하는 건 너무 큰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6월30일, 한겨레)
Q. 바이든 대통령 절친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토론 보다가 울어버렸대. 그리곤 곧 칼럼에서 바이든 사퇴를 촉구했지. 얼마나 엉망이었길래?
A. 보기 딱할 지경이었어. 쉰 목소리에 초점이 맞지 않는 퀭한 눈빛. 말하다가 자꾸 단어를 잊어버렸어. 인지 기능이 저하된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이었지. 특히 의료보험 얘기하다가 ‘코로나 19를 극복했다’라는 말을 해야 했는데 “메디케어’를 물리쳤다”고 잘못 말했어. 메디케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정책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늘 물어뜯는 이슈인데 말이야. 사실 이런 모습은 종종 있었어. 종종 사람 이름이나 고유명사를 틀리게 말했어. 김정은을 한국 대통령이라고 한 적도 있고. 가자와 우크라이나를 혼동하거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를 헷갈리거나. 6월13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는 혼자서 다른 편으로 걸어가다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얼른 데려오는 동영상이 나왔지.
Q. 뉴욕타임스가 토론회 끝나자마자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바이든은 대선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고 사설을 썼어. 바이든 충격 먹었겠다. 후보교체론 나오니까 2002년 한국 대선도 생각나고.
A.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이 민주당 경선에서 이미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보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지. 미국의 지성을 대표한다는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에 최대 위협이라면서 줄곧 민주당과 바이든을 지지했거든.
많은 한국인은 2002년 한국 대선을 ‘철새’가 난무했던 선거로 기억하지. 노무현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뒤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 안팎에서 ‘후보교체론’을 요구하며 흔들어댔던 거 기억나? 노무현 돕다가 이인제로 몰려간 사람들은 두고두고 철새로 낙인 찍혔지. 정말 민주주의의 참담한 장면이었지.
그런데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뉴욕타임스가 이미 여당 후보로 확정된 바이든에게 물러나라고 한 거야. 뉴욕타임스는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바이든이 후보로서 선거를 수행할 능력이 의심되기 때문이고 그러면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없다고 했어. 뉴욕타임스가 이렇게 과격하게 나선 데는 트럼프에 대한 불신과 위기감이 깔려 있어. 사설의 결론이 이래. “거짓말 후보를 패배시키는 민주당의 명확한 길은 미국 대중에 솔직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를 지속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11월에 트럼프를 패배시킬 수 있는 더 능력 있는 누군가를 선택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후보 사퇴야말로 바이든이 그렇게 오랫동안 숭고하게 봉사한 나라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다.”
Q. 2020년 바이든이 대통령 됐을 때는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거라고 알려지지 않았나? 왜 바뀌었지?
A. 바이든은 4년 전인 2020년 3월 대통령 출마를 밝히면서 새롭고 더 다양한 지도자 세대를 배출하는 민주당의 ‘임시 지휘자’ ‘가교’가 되겠다고 했어. 연임 안 하겠다는 뜻이었지. 하지만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의외로 민주당이 선전하자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 바이든은 중간선거 이튿날 기자들에게 “내 뜻은 재출마이다. 그러나 나는 운명을 존중하는 사람이고 궁극적으로 가족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고 했어. 그해 11월 말 추수감사절 연휴 때 바이든 가족 모임에서 재출마가 확정됐어.
민주당도 바이든 재출마에 우호적이었어. 바이든이 진보적인 의제를 입법 및 정책에 반영하는 성과를 냈거든. 그러다 보니 버니 샌더스 같은 진보적 인사를 내세우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어.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을 밀고 바이든을 주저앉혔던 오바마도 바이든 재선 도전에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었지. 당내 경쟁자가 없다 보니 제대로 토론 한번 없이 그냥 후보로 직행하게 된 거야. 그때 당내 경선 토론만 제대로 했어도 이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걸?
Q. 민주당에도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 아냐. 2008년 대선의 경우 ‘젊고 매력적인 유색인 대통령’이라는 컨셉을 짜고 오바마를 밀었던 그룹이 있었잖아. 이번엔 바이든을 전략적으로 사임시켜야 한다는 민주당 내 그룹이 없나?
A. 아직 정리된 움직임은 없어. 바이든이 선거 완주를 선언한 데다, 토론회 한번으로 후보를 교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많아. 하지만 후보교체론은 들끓고 있어. 트럼프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며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한 민주당 ‘큰 손’들이 동요하고 있어. 특히 이들은 바이든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영부인 질에게 누가 어떻게 접촉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래. 하지만, 바이든 본인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후보 교체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문제는 앞으로 지지율과 여론이지. 바이든이 계속 쇠약함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떨어지면 견디기 힘들 거야. 민주당의 유력한 선거 전략가인 제임스 카빌은 바이든이 결국 포기할 것이라고 전망했어.
Q. 바이든 물러나면 대안이 있어?
A. 우선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있긴 해. 하지만 바이든보다도 인기가 없어. 바이든이야 나이가 많아 실수를 했다지만 카멀라는 젊은데도 식견이 부족해 엉뚱한 발언들을 하거든. 비백인 여성에다가 캘리포니아 정계의 큰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취약점이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지사도 대안으로 언급되긴 하는데 그 역시 논란이 많아. 부동산값 폭등, 홈리스 증가 등으로 주지사로서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아. 자유주의 성향이 짙어서 보수 성향의 중도층이 싫어해. 그레천 위트머 미시간 지사 및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지사도 거론되지. 민주당 입장에선 대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경합주의 지사들이지만 뚜렷한 업적이 없다는 게 문제야. 하얏트 호텔 체인의 상속자인 제이비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맹렬한 트럼프 저격수이지만 민주당 진보 진영이 흔쾌히 받아들일지 알 수 없지. 다시 말하지만, 관건은 여론의 향배야.
Q. 토론에서 워낙 바이든의 멍한 모습이 부각돼서 그렇지 트럼프도 거짓말을 왕창 했잖아. 이런 것은 좀 걸러졌어야 하지 않나? 사회자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자제시키든지 했어야지.
A. 토론을 주최한 시엔엔(CNN) 팩트 체크를 보면 트럼프는 30차례나 허위 주장을 했어. 특히 2021년 의사당 폭동 때 자신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1만명의 진압군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거짓말까지 하더라고. 자기가 군중을 선동했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말이야.
그런데 사실 정치 토론회라는 것이 내용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하거든. 트럼프는 뻔뻔한 거짓말도 자신 있게 했지만 바이든은 우물쭈물 노쇠한 모습을 보였잖아. 특히, 정치 양극화가 심화한 상황이라 유권자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무리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개의치 않거든. 토론 사회자나 패널들이 트럼프의 거짓말을 제지 못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역부족인 측면이 있지.
Q. 그러면 이제 민주당은 폭망한 거야?
A.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잖아. 아직 예단은 일러. 이번 사태가 오히려 민주당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어.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민주당이 바이든 대신 젊은 후보를 내세우면 판세가 요동칠 것이라고 경고했어.
후보가 안 바뀌어도 바이든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하고 선거전략을 잘 짜면 의외로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고. 바이든은 토론 직후 다른 유세장에 가선 셔츠 버튼을 2개나 풀어헤치면서 ‘포효’했어. 트럼프 비토론이 여전히 견고하니까 바이든이 페이스를 회복하고 민주당 지지층이 위기감 속에서 결집한다면 역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여론조사상 두 후보의 지지율 변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어.
Q. 그래도 트럼프 집권 가능성이 커진 건 사실이니까, 한국 정부는 준비를 잘해야겠다.
A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대외정책에 큰 변화가 올 거야. 트럼프는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는 데 돈을 쓰지 않고 실익을 얻겠다는 기조니까. 한국엔 방위비 분담금 증액뿐 아니라 무역 등에서 살벌한 요구가 빗발칠 거야.
다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에 다른 접근을 할 거야. 트럼프는 토론 뒤 유세를 하면서 “미국이 현명한 대통령을 갖는다면, 중국, 러시아, 북한은 미국의 적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어. 바이든처럼 자유와 인권을 명분으로 북·중·러와 대결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두고 봐야겠지. 한국은 더욱 복잡해진 외교 현실에서 냉철한 태도로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거야. 고차방정식도 일차방정식으로 푸는 윤석열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