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서 유명해졌다, 제주 오름에 미친 사진가…이 작품 못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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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5. 오전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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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사진작가 고 김영갑.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를 들 수 없을 때까지 제주도 중산간을 홀로 헤집으며 제주의 속살을 담았던 사진작가다. 그가 남긴 사진 갤러리 '두모악'이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일 장기 휴관에 들어갔다. 사진은 2003년 11월 촬영한 김영갑의 생전 모습. 이 사진을 찍고 1년 6개월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영갑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 제주 중산간 비경을 카메라로 담다가 루게릭병으로 죽은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1957∼2005)의 사진 갤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이달 1일 장기 휴관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폐관은 아니다. 박훈일(56) 관장에 따르면 4개월 휴관 뒤 11월 1일 다시 문을 열 계획이다.

갤러리 앞에 써 붙인 갤러리 휴관의 이유는 ‘내·외부 시설 정비’다. 그러나 차마 알리기 어려운 사연이 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이유근(81·제주오라요양병원장) 이사장이 갤러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들려줬다. 몇 해 전부터 갤러리 사정이 안 좋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갤러리 방문객이 뚝 떨어졌습니다. 사진 갤러리가 요즘 트렌드에 뒤처진 이유도 있겠지요. 제주도에만도 미디어아트 전문 갤러리가 여러 곳이니까요. 저도 병원 사정이 안 좋아서 갤러리에 도움을 못 주고 있었습니다. 박훈일 관장도 2년 넘게 월급을 못 받았어요. 다른 갤러리 직원들도 월급이 밀렸습니다. 일단 급한 사정부터 해결하고 가을에 다시 문을 열 생각입니다.”
사진작가 김영갑. 근육이 마르는 병에 걸려 웃는 표정 짓는 것도 애를 먹었다. 겨우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지었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영갑은 충남 부여 출신의 사진작가다. 제주의 풍광에 홀려 1985년 섬으로 넘어왔다. 루게릭병에 걸린 건 1990년대 중반이고, 확정 판정을 받은 건 1999년이다. 온몸의 근육이 마르는 형벌 같은 병에 걸리기 전까지 그는 제주도 중산간을 헤매며 제주의 영혼 같은 풍경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았다. 긴 시간 노출을 준 김영갑의 제주 사진은 꼭 제주의 바람을 촬영한 것 같았다. ‘제주 바람을 찍다 간 사진작가’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는 죽고서 유명해졌고, 그가 죽고서 그가 사진에 담았던 오름도 유명해졌다. 대표적인 오름이 용눈이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의 관능적인 곡선에 빠진 그는 허구한 날 용눈이오름에서 살았다. 탐방로는커녕 진입로도 없었던 시절, 용눈이오름은 소 풀어놓고 기르는 언덕배기였다. 지금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손꼽히는 명소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에 등장했고, 탐방로 따라 야자 매트도 깔렸다. 방문객의 발길이 너무 잦아 2021년 2월부터 2년 6개월간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김영갑이 유난히 사랑했던 용눈이오름. 사진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이 유난히 사랑했던 용눈이오름 분화구의 곡선. 사진 김영갑 갤러리
김영갑이 세상에 남긴 건 20만 롤에 달한다는 필름과 폐교를 고쳐 들인 사진 갤러리뿐이다. 김영갑의 제주 제자 박훈일이 스승이 떠난 갤러리를 지켰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만 해도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박훈일 관장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연 방문객이 10만 명 정도였는데, 코로나 사태 3년간 30%대로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갤러리 누적 방문객은 120만 명이 넘는다. 갤러리 휴관 소식을 전해 들은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도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김영갑은 제주의 진짜 모습을 알린 사진작가입니다.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주올레 3코스를 낼 때 갤러리를 방문하도록 코스를 조정했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아직도 제주올레 코스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김영갑 갤러리처럼 뜻깊은 곳이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주 사람의 불찰도 큰 것 같습니다. 제주올레도 회생 방안을 찾아보겠습니다.”
김영갑 갤러리가 문을 닫기 전 내부 모습. 손민호 기자
7월 19일 촬영한 김영갑 갤러리 정문 앞 모습. 손민호 기자
김영갑이 죽고서 김영갑 작품은 한 장도 팔지 않았다. 고스란히 다 갖고 있다. 박훈일 관장이 꾸준히 디지털화 작업을 했는데, 현재 1차로 마무리한 작품만 4만2000장이 넘는다. 갤러리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대여나 위탁 판매 또는 미디어아트 제작 등 활용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생전의 김영갑은 정부 도움을 일절 거절했었다.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지금도 갤러리는 문체부나 제주도와 거리를 두고 있다.

" 만일 처음부터 (갤러리) 완성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만, 한 주만, 한 달만, 내 힘이 닿는 데까지만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

김영갑이 생전에 남긴 갤러리에 관한 기록이다(『그 섬에 내가 있었네』 인용). 근육이 말라 카메라를 들지 못하자 김영갑은 갤러리 조성에 혼신을 기울였다. 비록 서둘러 가는 바람에 갤러리 정원이 완성된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당신의 뒤를 이은 박훈일 관장이 정원 작업을 마쳤다. 제주 중산간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정원 모퉁이에 뼛가루가 된 김영갑이 누워 있다. 내년 5월 29일이 김영갑 20주기다. 잊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나 20주기 행사가 갤러리에서 치러지는 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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