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금도, 연명의료도 거부…'아침이슬'처럼 덤덤히 떠난 김민기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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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4. 오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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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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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생전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한 후 억지로 연명하지 않고 순리대로 떠났다. 중앙포토
21일 세상을 떠난 김민기 전 학전 대표는 '뒷것'처럼 무덤덤하게 삶을 마무리했다. 조의금이나 조화를 받지 않았고 연명의료를 멀리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 김성민씨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조의금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 팀장은 "학전이 폐관하면서 많은 분이 알게 모르게 저희 선생님 응원하시느라고 십시일반 도와주셨다. 충분히 가시는 노잣돈 마련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선생님이 늘 얘기하시던 따뜻한 밥 한 끼 나눠 먹고 차를 마시면서 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김민기는 '가수·배우 뒤에 선 뒷것'으로 스스로 평가했듯이 조의금에도 뒤로 물러섰다.

항암치료 안 듣자 중단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4기이다 보니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는 못 하고 항암제를 쓸 수 있는 정도였다. 4기 위암에 쓰는 일반적인 항암제를 투여했다. 약이 잘 듣지 않자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그는 얼마 전 위기상황이 닥쳐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일반적으로 말기 암은 통증이 극심하다. 진통제가 투여됐고 폐렴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그때 소위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낯선 서류에 서명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연명의료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설명한 후 의사와 환자가 함께 서명한다. 연명의료행위는 심폐소생술·혈액투석·수혈·체외생명유지술(ECLS), 항암제·혈압상승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말한다. 김민기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고민 후 서명했고, 그대로 하고 떠났다. 건강할 때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성한 적이 없다고 한다.
'뒷것' 김민기 순리 따른 임종
연명거부 서명, 조화도 거부
주변 도움이 노잣돈·조의금
병원 대신 집에서 오래 보내

김민기는 위기상황을 넘기자 "집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다"며 퇴원했다. 이에 맞춰 의료진은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길 추천했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이 집으로 가서 편안한 임종을 돕는 서비스이다. 이런 걸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전국에 38곳(2023년 4월 기준)에 불과하다. 항상 대기자가 넘친다. 김민기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하루 보냈지만 말기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연합뉴스

김민기는 한창 전 의료진의 사전돌봄계획서 작성 요청에 응했다. 완화의료·호스피스를 비롯한 품위 있는 마무리 계획을 짜는 것이다. 그는 평소 스타일대로 "알겠다"며 덤덤하게 응했다. 생애 말기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뚜렷한 계획을 세워놓진 않았지만, 상황에 맞게 따라갔다. 순리대로 하자는 뉘앙스를 비췄다고 한다.

김민기는 21일 오후 눈을 감기 전 가족과 만났다. 김 팀장은 기자회견에서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보고 싶은 가족들 기다리셨다가 다 만나고 가셨다"고 했다. 가족에게 "그저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임종 3~4개월 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원격전이 위암 5년 생존율 6.6%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암을 발견했을 때 4기였다. 간 등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위암은 감소 추세인 데다 치료 성적도 쑥쑥 올라간다. 2021년 암 발생의 10.6%를 차지한다. 한때 부동의 1위였으나 지금은 갑상샘-대장-폐에 이어 4위로 떨어졌다. 치료 기술이 발전하고 조기 발견이 늘면서 5년 상대 생존율도 크게 향상됐다. 1995년 5년 생존율이 43.9%였고, 2021년에는 77.9%로 올랐다. 남자는 78.6%에 이른다.

신재민 기자

그러나 김민기처럼 전이되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암세포가 위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상태일 때 5년 생존율은 97.4%나 된다. 그러나 주위 장기나 림프샘으로 '국소 진행' 상태이면 61.4%로 떨어지고, 멀리 떨어진 장기까지 퍼진 '원격 전이' 상태가 되면 6.6%로 급락한다. 국한 상태에서 발견된 위암 환자가 65%, 국소 진행이 19.3%, 원격 전이가 10.9%(나머지는 모름)이다. 김민기는 원격 전이 상태였다. 좀 더 일찍 발견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조기 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순리-. 김민기의 마지막 키워드이다. 항암치료를 했지만 듣지 않자 중단했다. 인위적으로 목숨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도 거부했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유신혜 교수는 "고인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항상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 했지만 그걸 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의 평소 호의를 조의금으로 대신했다. 조화나 그것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쓴 리본으로 빈소를 장식하지 않았다.

오래 입원하면 가족대화 불가
품위 있는 마무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마지막 대화이다. 가족이나 가까이 지내는 주변 사람과 풀고 가야 한다. 많고 적음의 차이이지 이런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암은 진행 과정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급사는 거의 없다. "고맙다" "사랑한다" 또는 "미안하다" "용서해다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연명의료를 하거나 요양병원 등에 입원해 있으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김민기는 병원 대신 재택 임종을 선택하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주변 지인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가진 사람답게 순리대로 마지막을 보냈다. 유신혜 교수는 "연명의료 같은 거 하지 않고 의미 있게 보내고 떠났다"고 말했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자신의 대표곡 '아침이슬'의 노랫말처럼 떠났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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