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찬 "국정원 안일함에 정보원 희생…누가 정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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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9. 오후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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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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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광복회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인텔리전스 커뮤니티(Intelligence community·정보 기관의 세계)에선 적과 동지가 없다. 오로지 국가 이익만 있을 뿐이다.”

미국 연방 검찰이 등록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한국의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것과 관련, 이종찬(88) 전 국정원장(현 광복회장)이 18일 "국정원 요원들이 안일하게 행동해 정보원을 희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주미 대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이 테리와 만나 식사를 하거나 명품백을 사주는 장면이 고스란히 미 연방수사국(FBI)에 포착되는 등 아마추어적 첩보 행태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의 초대 안전기획부장(1998 3월~99년 5월, 임기 중 국정원으로 개칭)을 지낸 원로다. 제11·12·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독립 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그가 친정 격인 국정원의 정보 활동 행태에 쓴 소리를 쏟아낸 건 누구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꿰뚫고 있어서다. 앞서 미 뉴욕 남부지검은 테리가 지난 2013년부터 10여년 간 적법한 신고 없이 한국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명품 가방·코트, 고급 식사와 금전 등을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로 그를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주미 대사관 정무2공사 등 국정원 요원들과 테리 간 대화 내용, 명품 가방을 공여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사진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복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일문 일답.


Q : 파장이 크다. 통상적인 국정원의 정보 수집 관행과도 달랐다고 보나.
A : “그 사람(테리)에게 정보를 얻는 건 당연하고, 그런 일을 안 하면 국정원이 있을 이유가 없다. 또 그 사람(테리)이 (한국 정부)대리인으로 등록만 했으면 문제가 안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보관(국정원 요원)이 왜 명품 가방을 사주는 장면을 사진(CCTV)에 찍히고, 결제하면서 외교관 면세 혜택은 왜 받나.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다. 실망스럽다.”


Q :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A : “단기적으로 투자해 정보를 빼먹겠다는 얕은 생각으로 정보원을 희생시킨 것이다. FBI는 이 사건 수사를 위해 10년을 감시했다. 그 동안 워닝(경고)도 한 번 줬다는 거 아닌가.(2014년) 그 때 정신차렸어야 했다. 이 사람(테리)도 아주 똑똑하고 우리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미국 사회에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은근히 도와야지, 우리가 잘못했다. 특히 명품을 사주는 건 정보원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제 누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려 하겠나."

해외에서 정보 수집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 : “1976년 박동선 사건이 있고 나서 내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1981년), 미국에 가니 아무도 나를 안 만나줬다. 작은 선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미 관계가 심각하게 경색된 것이다. 이 때의 경각심을 계속 유지했어야 했다. 현장 정보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활동을 정밀화하고, 세심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박동선 사건은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가 한국계 미국인인 박씨를 동원해 미 의회에 현금 살포 등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 워싱턴 조야에 큰 파장을 남긴 정치 스캔들이다.)

지난 5월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수미 테리 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Q :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A : “정보원을 관리할 땐 무조건 장기적으로, 그 사람이 그 사회에서 난처하지 않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텔리전스 커뮤니티에선 적과 동지가 없다. 오로지 국익만 있을 뿐이다. 우방국에서 활동하더라도 사방이 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가까운가. 하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한 유대인 조너선 폴라드를 잡아 종신형을 선고했다. 최근에야 석방(2015년)됐다. 내가 재직할 시절에도 우리 측 직원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가 이를 문제 삼아 PNG(외교상 기피 인물)를 내버렸다. 상호주의로 우리도 러시아 요원을 추방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보관(국정원 요원)들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방국에서도 마찬가지다.”


Q :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A : “지금 국정원장(조태용)이 미국을 잘 아는 분이다. CIA(중앙정보국)를 넘어 대통령 직속 DNI(국가정보국장, 애브릴 헤인스)와 직접 이야기기해 바기닝(타협)을 해야 한다. ‘대리인 등록을 안 한 잘못은 있지만, 한국을 돕고 싶어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처벌하면 우리가 미국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 문제는 여기서 해결을 하자’고 아주 솔직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기자 프로필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 이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회부와 중앙SUNDAY 탐사팀을 거쳤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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