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CPI가 1년 전보다 3% 올랐다고 밝혔다. 4월(3.4%), 5월(3.3%)에 이어 석 달 연속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세가 이어졌다. 시장 전망치(3.1%)보다 낮다. 기대보다 더 낮게 나온 ‘서프라이즈’다. 특히 전월과 비교하면 0.1% 감소했다. 시장 전망치(0.1%)를 밑돈 것으로, 전월보다 물가가 떨어진 건 2023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선 이날 CPI 지표에 주목해 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중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코앞으로 뚜렷하게 둔화한 신호가 나타나면서 9월 인하 전망이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4월부터 석 달 연속 물가상승률이 둔화한 것인 만큼 Fed 입장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6월 CPI를 중요하게 봤다”며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9월 금리 인하 시그널을 공개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물가에 있어선 금리를 인하해도 되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 만큼 고용 지표에도 관심이 쏠릴 예정이다. 지난 9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높은 물가뿐이 아니다”며 “노동시장이 아주 많은 면에서 크게 냉각한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실업률은 4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으로 상승했다.
한은 12회 연속 금리동결, 역대 최장
시카고금융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공개된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하루 전까지 69.7%를 기록하다 예상치를 밑돈 CPI 상승률이 발표된 직후 79.4%까지 급등했다.
CPI가 3%까지 내려오면서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의 시간이 한층 가까워졌다. 파월 의장이 긴축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자, 한국은행도 이에 화답하듯 금리 인상 이후 처음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가계대출과 환율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어 한국의 인하 시점은 안갯속이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물가 상승률 안정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도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적절한 시점에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5월에는 깜빡이(금리 인하 신호)를 켠 것이 아니라 금리 인하 준비를 위해 차선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상태였지만 현 상황은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금리 인하)을 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7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한은이 총재의 공식 발언이나 통방문에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이다. 금통위 내에서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이른바 ‘비둘기파’(통화 완화 정책 선호) 의견도 지난 5월 대비 이달 1명→2명으로 늘었다. 사실상 금리 인하 쪽으로 한은이 ‘한 스텝’ 옮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파월 “노동시장 많은 면에서 크게 냉각”
미국 못지않게 한은도 물가 상승률 둔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4%까지 떨어졌고, 같은 시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2.2% 오르는 데 그치며 목표 물가(2%)에 근접했다. 이날 이 총재도 “물가 안정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했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의 ‘시기’다. 특히 최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점은 한은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전월 대비 6조3000억원 늘어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상반기(1~6월) 누적 증가액은 3년 만에 최대 규모다.
환율 불안도 변수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값은 1400원에 육박할 정도로 떨어져(환율은 상승) 있다. 이미 최대 격차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2%)가 한은의 금리 인하로 더 벌어지면 원화값 하락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