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몰린 'ABC동네'만 웃었다…화성 소비 126% 뛸 때 울산 -2% [청년 엑소더스발 소비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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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전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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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는 네이버, SK바이오팜 등 국내 손꼽는 ITㆍ바이오 기업이 몰린 ‘스타트업의 성지’ 다. 지난달 19일 찾은 판교역 인근 상가와 오피스는 공실률이 5% 미만이었다. 이아미 기자
인공지능(AI), 바이오(Bio), 반도체(Chips) 등 이른바 ‘ABC 첨단산업’을 품은 지역에서 지갑이 열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ABC산업이 몰린 판교ㆍ동탄신도시 등 수도권은 청년층 유입으로 주요 상권이 활기가 넘치는 반면 기계ㆍ중공업 등 전통 제조업에 의존하던 동남권(부산ㆍ울산ㆍ창원)은 청년층 유출로 소비가 얼어붙었다.
김주원 기자
9일 BC카드 데이터사업본부에 따르면 지역별 주요 상권을 서울과 경기도, 6개 광역시로 구분하면 최근 경기도에서 소비가 크게 늘었다. 지난 4월 기준 최근 1년(2023년 5월~2024년 4월)간 경기도(핵심 상권은 성남ㆍ화성시)의 신용카드 매출액은 코로나19가 유행되기 직전(2019년 5월~2020년 4월) 대비 46% 급증했다. 이때 매출액은 BC카드의 모든 회원사의 카드 승인액 기준이다. 반면 제조업 메카인 울산(남구)과 부산광역시(금정구ㆍ부산진구)는 같은 기간 마이너스다. 해당 지역 소비자의 씀씀이가 코로나19 직전으로 회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역별 핵심 상권 중심으로 5년간 신용카드 매출액 증가율을 살펴보면, 경기도 화성시(동탄)가 126%로 가장 높다. 뒤를 이어 경기도 성남시(42.9%), 서울 강남구(27.9%), 서울 중구(13.9%) 순이었다. 6개 광역시의 주요 상권은 대부분 하락했다.

경기도 화성과 성남시가 다른 지역과의 차별점은 ‘ABC 첨단산업’이 몰려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는 네이버·넥슨·SK바이오팜·차바이오텍처럼 국내 손꼽는 ITㆍ바이오 기업이 몰린 ‘스타트업의 성지’다. 1662개 기업이 2022년 기준 167조7000억원을 벌었다. 같은 해 경기도 지역총생산(실질 GRDP 기준 약 516조원)의 32%를 차지했다. 특히 전체 임직원 7만8000명 가운데 30대 이하가 약 60%를 차지한다.

첨단산업은 지역에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구매력을 갖춘 젊은층이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가 성장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첨단산업이 들어서면 지역의 소득이 높아지고 그만큼 소비 여력도 커질 수 있다”며 “여기에 소비성향이 강한 젊은층이 유입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점심에 찾은 판교역 인근 오피스 상가. 불고기ㆍ냉면ㆍ부대찌개집 등 식당은 물론 커피숍마다 사원증을 목에 건 회사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근 IT 회사에 근무하는 이모(27)씨는 “코로나19가 극심했을 때를 제외하면 판교 인근 식당은 직장인들로 붐빈다”며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판교역 근처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신모 대표는 “현재 판교 신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5% 미만”이라며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된 이후 (임대 시장에) 불경기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반도체' 훈풍에 동탄신도시도 소비가 늘고 있다. 지난달 19일 동탄의 주요 상권 중 하나 인 북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아미 기자
‘반도체’ 훈풍에 동탄신도시도 소비자 씀씀이가 커지면서 상권이 들썩인다. 동탄은 삼성전자 나노시티 화성캠퍼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과 도쿄 일렉트론 연구소 등이 몰린 곳이다. 올해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면서 이들 기업도 ‘깜짝 실적’을 거두면서 지역 상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동탄의 주요 상권 중 하나인 북광장엔 빈 점포가 거의 없다. 아파트 단지가 몰린 곳엔 학원과 병원들이 즐비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사장은 “한동안 삼성 직원들의 회식도 줄고 표정도 어두웠는데, 최근 다시 생기가 도는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경남 창원 산업단지 근처 지식산업센터 내 상가가 비어있는 모습. 인적이 드문 가운데 임대 문의 안내문만 붙어있는 곳이 많았다. 정종훈 기자
지난달 20일 경남 창원의 창원국가산업단지엔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동남권의 대표적인 기계산업단지 내 밀집한 중소기업엔 희끗희끗한 중장년 직원이나 외국인 근로자가 눈에 띌 뿐, 20ㆍ30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계 가공용 툴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우리 회사도)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없다”며 “창원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다 서울로 떠난다”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 대표는 밤엔 사람을 대신해 자동화 로봇으로 공장을 돌린다고 덧붙였다.

김기환 창원상의 매니저는 “창원은 1970년대부터 자동차ㆍ조선 등 기계산업 중심지였는데, 점차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워낙 무거운 장치산업이라 변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당수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호소하지만, 대부분 현장직으로 대학생들의 선호도가 낮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김 매니저는 “창원은 젊은층의 수도권 이탈이 늘고, 출생률도 감소하면서 올해 8월쯤 처음으로 인구 100만명이 깨질 위기”라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동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경남을 포함한 동남권에서 2만5511명 청년층(19~39세)이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전국 청년 가운데 동남권 청년의 비중은 2022년 13.5%로 2010년(14.9%) 대비 1.4%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의 청년층은 52.8%에서 54.5%로 증가했다. 전국 20ㆍ30세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의미다.

수도권으로 사람과 자본이 쏠리면서 수도권과 동남권 간 경제 규모 격차도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도는 2022년 기준 지역내총생산(실질 GRDP 기준)은 약 516조원으로 2015년(382조원)보다 35.2% 증가했다. 8년간 GRDP 성장률은 서울(18.5%)보다 더 높다. 반면 같은 기간 부산(8.7%)과 경남(3.4%)은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낮다. 울산은 오히려 7년 전보다 5% 감소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학력자와 청년층이 선호하는 첨단산업이 수도권에 집중화되면서 지역 간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며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는 동시에 인구ㆍ자본이 쏠린 수도권은 집값이 오르고, 저출생 등의 사회적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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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현장’의 눈으로 취재 ‘현장’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정종훈 기자입니다. 다양한 시선과 생각을 기사라는 잘 정돈된 그릇에 담아낼 수 있도록 치열하게 현장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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