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제주도에 믿고 갈 만한 식당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신라호텔이 10년째 교육하고 관리 중인 제주 식당이 22곳 있다. 신라호텔은 2014년 2월 제주 동네 식당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맛있는 제주 만들기(맛제주).’ 지난 10년간 신라호텔이 이 사업에 들인 돈만 50억원에 이른다.
맛제주 식당에 선정되면 제주신라호텔이 교육과 관리에 들어간다. 식재료 관리부터 육수·양념장 내는 법 같은 비법을 수시로 전수하고, 냉장고·솥밥기계·제면기 같은 주방시설을 사 주고, 매장 내부 인테리어도 대신 해준다. 말하자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원조인 셈이다.
시작할 때부터 맛제주 사업을 담당한 제주신라호텔 박영준(44) 셰프와 맛제주 식당 22곳 중 9곳을 다녔고, 그 중에서 5곳을 꼽았다. 여기서 소개하는 식당들이 모두가 감탄하는 맛집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믿을 수는 있다. 신라호텔이 제 이름 걸고 돌보는 동네 식당이 어디 흔한가.
신성할망식당은 고기국수집이다. 제주도청에서 멀지 않다. 박정미(56)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한다. 가게 이름에 ‘할망’이 들어가지만, 식당에 할머니는 없다. 원래 이 간판 걸고 장사하던 강인자 할머니가 간판과 레시피를 박정미씨에게 물려줬다. 박정미씨가 할머니 비법을 이어받아 가게를 지켜오고 있다.
낭쿰낭쿰은 ‘원 푸드 레스토랑’이다. 흑돼지 해물갈비 전골, 오로지 한 메뉴에 집중한다. 갈비 전골이니 물갈비의 종류라 할 수 있으나 문어·낙지·활전복·딱새우 등 해물이 잔뜩 들어가 해물탕처럼 푸짐하다. 그래도 기본은 갈비 전골이다. 국물을 먹어보면 안다. 제주도 흑돼지 갈비만 쓴다. 가게 입구에 매일 들어오는 흑돼지 주문표를 훈장처럼 붙여놨다.
국물 맛이 묘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맛이랄까. 묵직한 고깃국물인데 해물탕처럼 개운하다. 오늘 같은 국물 맛을 내려고 신라호텔과 주인 방씨가 6개월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전골 먹은 뒤 볶음밥은 필수다.
순두부도 다르다. 제주산 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든다. 비빔밥에 넣는 약고추장에는 볶은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밥은 즉석에서 지은 솥밥이다. 할머니 손맛에 신라호텔의 비법이 더해져 밑반찬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참, 식당에서 “할머니”라고 부르면 혼난다. “이모”라고 불러야 한다.
아내 진씨가 손맛이 좋다. 제주도 출신으로 멜젓(멸치젓) 같은 향토 음식도 잘한다. 이 집의 밥도 솥밥이다. ‘맛제주’ 식당의 솥밥기계는 모두 신라호텔이 사준 것이다.
박영준 셰프가 “관광객이 줄 서는 대박 맛집이 기대된다”고 추천했을 정도로 음식에 경쟁력이 있다. 오겹살·항정살은 특제 양념에 재워 사흘간 진공 숙성한 걸 쓰고, 돼지와 소 사골을 8시간씩 3번 고와 만든 육수로 국수와 국밥을 낸다. 남편 김씨가 “사골 손질할 때 골수를 일일이 빼고 육수를 내야 국물이 깔끔하고 담백해진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했다.
국수도 직접 만든다. 가게 이름에 ‘생국수’가 들어간 까닭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에 설치한 제면기에서 직접 면을 뽑는다. 냉장 숙성하는 반죽에 치자가 들어가 면이 노랗다. 고기국수에 수란을 띄운 것도 신라호텔에서 알려준 요령이다. 아직은 동네 손님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