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은 볼록하다? 통념 깨니 인물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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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17. 오전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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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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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 들어간 조각 ‘웃음’(2004) 앞의 이용덕. 김경록 기자
세수하는 남자, 아기 업은 여자, 경쾌하게 정면에서 걸어오는 여자….

사람보다 큰 크기 조각이 벽에 걸려 있다. 부조인가 싶은데 다가가 보면 쑥 들어가 있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 조각도 같이 움직이는 것 같다.

서울 평창길 토탈미술관에서 이용덕(65) 회고전 ‘순간의 지속’이 열리고 있다. 눈 감고 기도하는 김수환(1922~2009) 추기경도, 꼿꼿한 박태준(1927~2011) 포스코 명예회장도 그의 역상 조각으로 움직이듯 되살아났다. 이런 유명인들의 기념상도 만들었지만 이용덕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이름 없는 이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지난 11일 토탈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일상의 한순간, 모든 걸 흡수하는 그 순간을 조각으로 박제해 두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처음 역상 조각을 시도한 건 1984년, 그러나 세상에 차마 내놓지 못했다. 1991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야 내놓고 도망치듯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여러모로 통념을 깨는 역상 조각을 발표할 자신이 없었다. 첫째, “조각은 볼록하다”는 통념. 멀리서 보면 볼록 나온 부조 같지만 다가가면 움푹 들어가 알맹이가 쏙 빠져나간 것 같은 공허를 맞닥뜨리게 된다. 음과 양, 존재와 비존재를 가르는 공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이름도 없다가 2006년 마카오 미술관 개인전 때 비로소 그곳 큐레이터의 아이디어로 ‘역상 조각(Inverted Sculpture)’란 이름이 붙었다.

막대를 4면으로 쌓아 올린 ‘위대한 결집’(2023). [사진 토탈미술관]
둘째, “인물 조각은 구식”이라는 통념. 서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다니던 1980년대, 모두가 추상, 미니멀리즘을 향해 갔다. “유행일 때는 그것밖에 안 보여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다른 쪽으로 옮겨가죠.”

스스로 물었다. “세상에 딱 하나만 만들고 죽어야 한다면, 그때도 미니멀리즘 할래? 정말 하나만 해야 한다면 사람(조각)이 하고 싶어.” 인물 조각을 고수하는 그를 주변에선 딱하게 여겼을 정도. 1988년 첫 전시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새로 잘 닦인 신작로로 가지 않고 아무도 다니지 않은 오솔길을 찾아가겠다.”

마지막으로 “조각은 색이 없다”는 통념. 조각은 흔히 대리석·브론즈 등 재료의 색을 그대로 두지만, 합성수지 위에 회색·하늘색·노랑 등 실제와 다른 색을 칠해 비현실적 공간감을 만들었다.

그는 25년 재직하던 서울대 조소과에서 올 초 정년퇴임했다.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게, 질문과 생각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일이었어요. 가장 안타까운 건 스스로 자기 검증을 해 버린 학생들이죠. 뭔지 몰라도 하여튼 하는 애들이 최고예요. 몇 년 후 보면 그럴듯한 게 만들어져 있어요.”

역상 조각을 오래도록 세상에 발표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돌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25년 전, 마흔 살 이용덕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저질러라, 지레 겁먹고 안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어떤 사람’ 이렇게 미리 규정하지 말자. 오늘 내가 느끼고 있는 것에 아주 솔직하게 살아보자.”

15일 토탈미술관에서는 그의 역상조각 40년을 돌아보는 학술 심포지움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이용덕은 개념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재현의 논리에 갇혔던 한국의 구상조각이나 전통 인체 조각에 틈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성인 1만원.

기자 프로필

보고, 씁니다. 미술경영학 박사. 책 『완전한 이름: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아트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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