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이하 현지시간)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터너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에 관한 정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 당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공화당 소속의 하워드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ㆍ공화당의 상ㆍ하원 지도부 8명을 대상으로 기밀로 분류한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을 비공개로 보고했다.
당사자인 설리번 보좌관은 2월 26일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나와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은 러시아의 인공위성 공격 능력을 뜻하며, 이는 대기권 밖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금하는 1967년 유엔 우주조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국 언론은 러시아가 위성을 공격하는 우주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우주 핵무기는 우주 공간에서 핵을 터뜨리면 나오는 전자기펄스(EMP)로 인공위성을 망가뜨린다. 전자레인지 안에 전자기기를 넣고 돌리면 무용지물이 되듯 핵 EMP는 인공위성의 전자장비 회로를 태우는 원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19일 전인 2022년 2월 5일 코스모스(Cosmos)-2553 위성을 쏴 올렸는데, 이 위성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는 우주 핵무기 배치에 대한 대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4월 24일 우주 군비경쟁 방지를 위해 우주 핵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동요 ‘반달’에서 우주를 평화롭고 한적한 공간으로 그렸다. 하지만 현실의 우주는 안 그렇다. 2024년 우주는 혼잡하고, 대립적이며, 경쟁적인 공간이다. 우주엔 6월 14일 현재 1만 179개의 위성이 우주에서 작동하고 있다. 인공위성의 추세가 대형위성에서 소형위성으로 바뀌면서 궤도 상의 물체가 늘어나고 궤도가 더욱 혼잡해졌다. 위성끼리 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주 핵무기 사례가 보여주듯 우주에서의 군비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강대국은 상대국의 인공위성을 파괴하는 무기를 개발하거나 배치하려고 있다.
아울러 한국을 포함한 미국ㆍ러시아ㆍ유럽ㆍ중국ㆍ일본ㆍ인도 등 우주 발사체를 개발한 ‘우주 7강’ 이외 수많은 중견국과 약소국 등 국가뿐만이 아니라 기업, 대학들도 우주로 뛰어들고 있다. 우주 클럽(Space Club)의 문호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우주의 국제행동 규범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우주안보(Space Security)가 중요해지고 있다. 우주안보는 “어떠한 간섭이나 방해 없이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형태”이며 “우주 관련 지구상 활동과 우주내 활동에 모두 적용된다”로 정의(『우주안보의 이해와 분석』)할 수 있다.
우주안보는 안보에서 떠오르는 스타다. 그러나 틀과 개념이 아직 자리가 안 잡혔다. 그래서 12~1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학회장 이건완 국방과학연구소장) 종합학술대회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군사과학기술 분야 전문 학술대회다.
올해 대회는 한국우주안보학회(학회장 이재우 건국대 교수)와 공동으로 개최됐다. 한국우주안보학회에서는 12~13일 국내의 우주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우주안보 포럼’을 진행했다. 우주안보 포럼에서 우주안보의 얼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왜 우주 핵무기로 대립하고 있을까. 오현웅 항공대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교수는 “미국은 중ㆍ대형 위성뿐만 아니라 소형ㆍ초소형 군집위성도 투자해 하이브리드 구조로 전환하려고 한다”며 “러시아는 위성군(群)을 한꺼번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정식 공군사관학교 교수는 “러시아가 우주 궤도에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거나, 실전에 쓰기는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미국과 동맹국 위성뿐만 아니라 자국은 물론 중국과 같은 우방국의 위성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보다 위성 역량이 떨어진 러시아는 억제 차원에서 우주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한다”고 설명했다.
우주는 원래 전쟁터였다. 우주 개발은 냉전 때 무기 개발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발단은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V2 탄도미사일이었다. 소련은 V2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R-7에 '스푸트니크' 위성을 태워 1957년 10월 4일 발사했다.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소련이 위성 대신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 미소의 우주 경쟁(Space Race)이 불붙었다. 미국은 1969년 7월 20일 달 탐사에 성공하면서 소련을 꺾었다. 더 나아가 1983년 3월 23일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주에서 요격한다는 우주방위구상(SDI)을 발표했다.
소련의 붕괴로 우주는 미국이 지배하는 공간이 됐다. 1990~1991년 걸프 전쟁 때 미국은 위성항법시스템인 GPS의 힘을 빌려 스마트 폭탄을 이라크에 떨궜다. 하지만 러시아가 다시 우주로 눈을 돌렸고, 중국은 무섭게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뉴 스페이스(New Space)라고 불리는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우주에 전운이 돈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스타링크를 이용해 군사 통신·지휘통제는 물론 인지전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스타링크를 방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챈스 솔츠만 미국 우주군 참모총장은 2022년 12월 레이건 국방 포럼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지켜보고 있는 근대 전쟁은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도 우주안보에 신경을 써야할 처지다. 우선, 북한이 지난해 11월 23일 만리경-1호 정찰위성을 발사했다. 이 위성은 500~600㎞ 고도에서 최소 하루 2번 한반도를 지나가며 해상도 해상도 10m급(추정)의 영상을 촬영한다. 당장 안보에 큰 위협은 아니지만, 거추장스런 존재다.
북한의 위성발사로 남북한은 '우주경쟁'을 벌이게 됐다. 물론 한국이 훨씬 앞서있지만, 최근 북한·러시아 관계가 좋아지면서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해 한국을 추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30일 광학(EO/IR) 정찰, 지난 4월 8일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다. 정찰 위성인 ‘425’ 말고 통신 위성인 ‘무궁화’, 관측 위성인 ‘천리안’, 다목적 실용 위성 ‘아리랑’ 등 다양한 한국 위성이 궤도를 돌고 있다. 한국도 우주에서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셈이다.
그런데 우주는 넓지만, 위성 궤도는 안 그렇다. 적도 상공 3만 5786㎞ 위정지궤도가 특히 빡빡하다. 정지궤도는 지구의 중력과 위성의 원심력이 평행한 구간이다. 정지 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위성은 항상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지궤도 중 적도면을 따라 그려진 지구동기궤도가 노른자위와 같다. 그런데 이웃 위성과의 간섭 현상을 막으려면 전체 360도에 3도 간격으로 모두 120기만 지구동기궤도에 올릴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은 우주 후발국으로 우주안보를 위해 이곳을 선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 쓰레기(Space Debris)도 문제다. 다 쓰고 난 위성이나 우주발사체(SLV) 구성품이 우주 쓰레기가 되는데, 우주 잔해물이라고도 부른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크기 1㎜~1㎝의 우주 쓰레기는 1억 7000만개, 1~10㎝은 67만개, 10㎝ 이상은 2만 9500개가 돌아다니고 있다. 이 가운데 미 우주군은 3만 2750개만 추적하고 있다. 나머지는 행방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우주 쓰레기가 위성에 부딪히면 위성이 부서지거나 못 쓰게 된다. 저궤도 위성에 많이 기대는 6G가 대세가 될 때 우주 쓰레기 때문에 통신이 제대로 작동 안 할 수 있다. 우주안보가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부 우주 쓰레기는 지구로 떨어진다. 미국이 1984년 쏴 올려 2005년 임무를 마친 지구복사수지위성(ERBSㆍ무게 2.45t)이 지난해 1월 9일 대기권으로 재진입한 뒤 추락했다. 당시 위성 예상 추락 지점에 한반도가 들어가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다행히 위성은 베링해 근처에 떨어졌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우주 쓰레기 추락 사고가 2018~2022년 최근 5년간 884% 급증(2018년 250건→2022년 2648건)했다.마른하늘에 날벼락 말고 위성추락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태양이 플라스마와 자기장을 뿜어내는 태양풍도 위성에 악영향이다. 그런데 태양풍은 11년 주기로 많아졌다가 적어지는 태양의 흑점과 관련 있는데, 올해부터 2027년까지 가장 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우주안보를 지키는 힘을 우주력(Space Power)이라고 하면, 우주력의 근원은 군사, 경제, 외교다. 군사는 우주력의 기반이다. 미국은 아예 우주군(Space Force)을 창설해 우주의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다. SF 영화 '스타워즈'에서처럼 우주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우주 전함이 포격전을 펼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우주 무기는 다양하다.
위성 요격 미사일인 위성공격무기(ASAT)은 미국·러시아·중국·인도가 실전배치한 상태다. 레이저나 마이크로파 등 고출력 에너지로 위성을 파괴하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각국이 열심히 개발 중이다.
우주 무기에 적극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2021년 로봇팔이 달린 스지엔(實踐·SJ)-17 위성을 발사했다. 중국은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위성이라고 발표했지만, 미국은 중국이 이 위성으로 자국 위성을 낚아챌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 중국의 SJ-21은 2022년 다른 위성과 도킹한 뒤 정지궤도보다 더 높은 무덤궤도로 끌고 갔다.
위성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경호위성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또 고장 난 위성을 우주에서 고치는 지구동기궤도 로봇 서비스(RSGS)도 연구 중이다.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은 위성 해킹이다. 장대희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인공위성 시스템은 특수 목적에 최적화해 기존 보안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고, 위성통신은 대기 시간이 길고 안테나를 위성에 지향해야 하는 등 위성 보안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머로 지상과 위성간 통신을 방해할 수도 있다.
경제적 우주력은 우주 산업이 흥하면서 중요해졌다. 민간의 우주 기술은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우주 산업은 근사적 우주력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미국은 특히 미국은 국방부와 상업용 위성 산업을 통합하려고 한다.
우주 개발은 대립보다는 협력에 기반을 둬야 하는데 신냉전은 장애물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에 인도가 협력 의사를 밝혔고, 러시아와 중국은 2021년 유인 달 기지 건설 협력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외교적 우주력도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 우주 쓰레기와 우주 교통관리에 대한 국제 질서를 만들고, 더 나아가 우주 군비통제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정식 교수는 “한국은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세우고 우주항공청을 발족했다”면서 “우주안보도 대통령실이 나서 ‘우주안보 전략’을 만들며 총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