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강신재(1924~2001)가 1960년 『사상계』에 발표한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이다. 비누 냄새는 주인공의 인상이나 관계 등을 시각적·촉각적으로 환기한다. 천사 조각상들은 전시장 밖까지 강한 존재감을 발한다. 향기, 바로 비누향 때문이다.
서울과 런던에서 활동하는 신미경은 지난해 우연히 ‘엔젤향’을 접하면서 천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보이기는커녕 그 존재 여부마저 불확실한 천사를 가지고 향기까지 만들어 내다니 상상력의 끝판왕이 아닌가 했죠.” ‘엔젤’ ‘스노우 엔젤’ ‘엔젤스 윙’ 등 시판 3종 천사향을 담은 비누로 천사 조각상을 만들었다. 비누향의 하이라이트는 화장실. 어린이갤러리가 있는 지하 화장실 세면대에 놓인 천사 조각상을 만져보고 씻어볼 수 있다. 적당히 관람객 손을 탄 뒤 다시 전시할 예정이다.
이번엔 서양의 신, 천사다. 오랜 세월 미술가들이 상상해 그려온 이미지를 그대로 비누 조각으로 만들었다. 추상화를 닮은 ‘비누 회화’들도 내놨다. 2톤 가까이 녹인 비누를 큰 틀에 부어 굳힌 ‘라지 페인팅(Large Painting)’ 시리즈다. 작가는 “화장실 비누 조각도, 벽에 걸린 비누 회화도 제가 그 결과를 통제할 수 없고, 같은 걸 재연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찮은 비누에서 철학적 매력을 찾아낸 신미경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13), 하인두예술상(2023), 서울예술상(2024) 등을 수상했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김성은 운영부장은 “서도호·강서경·홍승혜 등 미술가들도 이곳 어린이갤러리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줬다. ‘비누로 만든 천사’에서 영감을 얻어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5월 5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