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코미셰 오페라의 텅 빈 무대와 객석은 2022년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작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보수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재개관 직전인 2021년에 촬영됐다.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코로나 19 기간 동안 촬영한 회퍼의 신작 14점이 전시 중이다.
코로나든 아니든 50년 가까이 빈 건물에서 셔터를 누른 칸디다 회퍼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눈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감염병 이전의 그 관객이 아니다. 2010년 세상을 뜬 사라마구의 책이 코로나 19 기간 내내 새삼스럽게 인용된 것처럼.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도시에서 박물관이 얼마나 무용하고 무력한지 썼다.
회퍼의 사진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 주인공이다. “나는 건축 사진가가 아니라 공간의 초상을 찍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정중앙에서 좌우대칭으로 담아낸 건물 내부는 어느 한 곳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없어 구석구석 눈길을 끈다. 실제 그곳에서 맨눈으로 봤다면 간과됐을 디테일을 모조리 담아 보는 이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 그의 사진은 때론 ‘신의 시선’이라고까지 불린다. 사진은 시간의 한 점을 담는 예술이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시간을 길게 늘인 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회퍼의 사진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째 인위적 조명을 쓰지 않는다. 자연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건물 내부에 관심이 많다. 둘째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촬영할 때 느릿한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담아낸다. 셋째, 인물이 없다. 자기 작업에 사람을 동원하는 것도, 촬영하러 간 공간에서 바삐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도 불편해한다. 그러나 오래된 문화 공간을 찍는 그의 사진에서는 사람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 그곳을 드나들었을 사람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1944년 방송기자인 아버지와 무용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회퍼는 30대 초반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베허와힐라베허에게 사진을 배웠다. 사진이 막 예술학교의 정식 학과가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베허 부부는 1960년대 독일의 공장 건물들을 촬영해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하며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흐름을 형성했다. 회퍼는 함께 배운 토마스 슈트루스(70), 토마스 루프(66), 안드레아스 구르스키(69) 등과 베허 학파 1세대를 이뤘다.
"인내와 끈기를 중시한다"는 회퍼는 유행이 여러 번 바뀌었을 5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하며 고색창연한 건물을 담아왔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유럽, 익숙지 않은 공간은 좀처럼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이국적인 것을 착취하는 것 같다"는 이유다. 제목엔 장소와 촬영 연도만 간결하게 담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말도 경제적으로 했다. "카메라를 놓고, 렌즈를 통해 대상을 보고, 찍는다. 그러면 필요한 것이 다 담긴다.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를 어디에 놓느냐다. 현실과 미학의 밸런스? 그런 거 없다. 그저 자리를 잡고 찍는다." 손목에 검정 밴드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의 스와치 시계가 덤덤하게 채워져 있었다. "실용적이니까. 1년에 한 번 배터리만 갈아주면 되잖나."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인간 활동의 기록이자 조용한 경이로서 시대를 초월한다"고 평가했다. 베를린 예술아카데미는 2024년 케테 콜비츠 상 수상자로 회퍼를 선정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아트 위크 때 시상식과 수상 기념전을 갖는다.
◇전시정보= 칸디다 회퍼 ‘Renascence(재생)’,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K2, 7월 28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