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의사인 남편과 결혼한 A씨, 부부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11년부터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한 겁니다. 잦은 외박에 이어 내연녀와 살림까지 차린 남편은 2012년에는 이혼까지 요구했습니다. A씨는 이혼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고, 법원 역시 유책배우자인 남편이 이혼을 청구했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라고 판결했습니다.
이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편은 내연녀와의 관계에 더욱 집중한 듯합니다. 2013년 8월, 남편은 자신의 이혼 청구를 기각하는 1심 선고가 나오자마자 자신이 들어둔 생명보험계약 4건의 보험 수익자를 내연녀로 바꿔둡니다. 2015년 2월에도 1건 더 바꿔놓고요.
2017년 1월, 남편은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남편의 생전 바람대로 내연녀는 사망보험금 약 12억 8000만원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내연녀에게 남긴 유산은 더 있었습니다. 남편은 동료 의사들과 동업 계약을 체결해 병원 여러 곳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남편이 죽기 약 7개월 전, 자신의 지분금을 대신 받을 권한이 내연녀에게 있다고 동업 계약서에 명시를 해놨던 겁니다.
남편이 죽은 뒤 내연녀는 이 조항을 근거로 남편의 동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 지분금 9억 8400여만원을 챙겼고요. 게다가 남편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내연녀에게 8억 5000여만원의 현금과 수표를 지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내인 A씨에게 돌아온 건 2억 3000만원 정도의 예금이나 적금 등이었습니다. 그 뿐일까요. 남편의 카드 연체금이나 미납된 세금 등 5억 7500여만원의 빚도 떠안게 됐죠. 결국 A씨는 2017년 4월 '한정승인' 신고를 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2억 3000여만원 만큼의 빚만 책임지는 겁니다. A씨가 상속 받을 돈보다 남편이 남긴 빚이 많았으니, 결과적으로 A씨가 받을 수 있는 '순상속분액'은 0원이 됐습니다.
A씨는 결국 내연녀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냅니다. 내연녀가 가져간 돈 중 17억 3000여만원은 자기 몫이라는 주장입니다. 내연녀가 받은 생명보험금, 동업 병원 지분금, 생활비를 남편의 유산으로 다시 계산해 자신이 받아야 할 상속 비율을 따져본 겁니다. 어쨌든 A씨가 남편의 배우자로서 유일한 상속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응당 받을 유산인데도 아직 받지 못한 재산, 즉 '유류분 부족액'은 이렇게 계산됩니다. 남편이 남긴 재산에다가 A씨가 받을 비율을 계산한 다음, A씨가 이미 챙긴 돈은 빼는 건데요.
일단 남편이 남긴 재산을 따져봅니다. 상속 재산과 증여 재산을 더하고, 여기서 빚을 빼는 식으로 계산하는데 이를 '기초재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초재산을 상속권자들이 나눠 가지는 비율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A씨와 같은 배우자는 1/2을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데요. 남편의 기초재산에다가 1/2을 곱한 다음, A씨가 남편 생전에 이미 증여받은 재산과 순상속액을 뺍니다.
아무래도 기초재산이 많으면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유류분 금액' 역시 늘어나겠죠. 남편이 내연녀에게 남긴 생명보험금이나 동업 계약 지분금 같은 돈도 남편의 기초재산으로 끌어와야 A씨는 유리해집니다. 내연녀가 당연하게 가져가고 끝날 돈이 아니고, A씨 비율도 계산해야 하는 남편의 유산이라는 거죠.
반면 내연녀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내연녀에게 남긴 생명보험금이나 동업 계약 지분금, 생전 현금 증여 등은 이미 자신의 돈이 된 상태라고 주장해야 유리하겠죠. "더 이상 남편의 유산이 아니고 내 돈이니, A씨가 유류분부족액을 계산할 때 기초재산으로 포함시키지 말라"고요.
이런 분쟁에 대한 민법 조항이 있습니다. 1114조에 따르면,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산입되는 증여는 '상속 개시 전의 1년간 이루어진 것'에 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결국 이 '1년'이라는 기간이 핵심이 됩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상 증여를 주고받는 사람(남편과 내연녀)이 유류분 권리자(A씨)에게 손해가 될 것을 알고 증여를 한 때에는 1년 전 것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9년, 1심 재판부는 A씨가 내연녀로부터 약 3억 1900만원 정도만 더 받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A씨가 요구한 금액보다는 훨씬 적었죠.
내연녀가 미리 챙긴 생명보험금이 기초재산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남편이 생명보험계약의 보험수익자를 내연녀로 돌려둔 것은 숨지기 2년 혹은 4년 전이죠. 상속 개시 1년 내에 이뤄진 증여가 아니어서, A씨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증여재산이 아닌 겁니다.
남편이 내연녀와 동거하면서 준 현금과 수표 8억 5000여만원에 대해서도 A씨 몫을 요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돈이 법적 증여인지 아니면 공동 생활을 위한 비용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죠.
다만 내연녀가 받은 병원 동업 계약 지분금에 대해서는 A씨 몫을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내연녀에게 지분금이 가도록 계약 내용을 바꾼 시점이, 남편이 숨진 때로부터 1년 이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편이 남긴 예금 등 2억 3000여만원에다 지분금 9억 8400여만원을 더하고, 빚 5억 7500여만원을 빼 기초재산을 계산하면 6억 3900여만원입니다. 여기에다 A씨가 요구할 수 있는 상속분 1/2을 곱하면 3억 1900여만원이 남죠.
A씨의 경우 생전 남편으로부터 미리 증여받았던 돈은 한 푼도 없는데다, 앞서 남편 빚 때문에 한정승인을 신고해 '순상속분액'이 0원이 됐으니 여기서 더 이상 뺄 돈은 없고요. 법원은 3억 1900여만원을 내연녀가 A씨에게 줘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같은 1심 판단은 2심에서 한 차례 뒤집히긴 했습니다. 지난 2020년 2심 재판부는 남편이 자신이 납입해놓은 보험료 등 재산을 내연녀에게 증여하면서 A씨 몫의 유산에 손해가 갈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관련 서류에 자필 서명을 했던 내연녀 역시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고, 1년 기간과 상관 없이 보험금을 기초재산으로 봐야 한다고 했죠. "남편이 이혼에 실패하자 A씨에게 재산이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입과 지출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요.
2심 재판부는 또 A씨가 떠안아야 했던 빚 5억 7500만원 중 일부도 내연녀가 부담하게끔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A씨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약 12억 6,100만원이라는 판결입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심 재판부 판단이 맞는다고 11일 밝혔습니다. 사건은 원심 법원으로 파기환송됐습니다. 다시 핵심 쟁점은 남편이 A씨에게 손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내연녀에게 생명보험금 등을 증여했는지, 또 내연녀도 이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였습니다. 이게 인정되면 2심 판결처럼 남편이 숨진 시점으로부터 1년이 더 지난 증여도 기초재산으로 산정될 수 있으니까요.
대법원은 남편의 나이, 직업, 소득, 사망 경위 등에 비춰볼 때, 남편이 A씨에게 손해가 갈 것을 알고 내연녀에게 증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40대 중반의 의사인 남편에게 건강상·일신상 문제가 있었다는 정황도 없는 상황에서, 남편 스스로 자신의 재산이 늘지 않을 것을 예상해서 미리 증여를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재판부는 또 "남편이 자기 명의의 재산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면, 이는 아내와의 이혼과 재산 분할을 대비한 것으로 볼 여지가 더 크다"고 했습니다.
다만 생명보험계약의 수익자를 누군가로 지정하는 행위 자체는 증여로 보는 게 맞다고 최초로 설시했습니다. 또 A씨가 앞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돈 만큼만 남편의 채무를 갚는 한정승인을 신고해 해결한 상태이기 때문에, 남은 빚 금액은 내연녀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