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세계 ‘톱3’ 만든 게임 체인저 [갑진년 빛낸 ‘올해의 CEO’ 5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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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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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하드웨어 벗어나 차세대 SDV 전환 속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2, 2023년에 이어 3년 연속 ‘올해의 CEO’ 종합 1위에 올랐다. 정 회장은 평가 부문별로 경제 발전 기여 1위, 사회적 책임 1위 등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내수는 물론 자동차 시장 본고장 미국에서 판매 신기록을 경신했고 전동화,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역량에서도 단연 돋보였다는 평가다. 덕분에 올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달성한 역대 최대 매출 262조4720억원과 영업이익 26조7348억원을 다시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맨 앞에서 이끈 지 만 4년이 됐다. 전통적인 완성차 산업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성공을 거둔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체제로 전환한 이후 혁신을 강조하는 ‘게임 체인저’를 강조하며 내연기관과 모빌리티를 모두 아우르는 산업군에서 분투를 벌이는 중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 제공)
북미 시장서 판매 신기록

글로벌 판매 ‘톱2’ 넘보기 시작

현재까지 성과는 고무적이다.

특히 미국에서 현대자동차그룹 판매 비중이 3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판매 대수도 지난해를 넘어 사상 최대치를 눈앞에 뒀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올해 1~11월 현대차·제네시스·기아의 미국 내 판매량은 총 154만8333대에 달한다. 이는 같은 기간 글로벌 시장 전체 판매량(한국 포함) 665만6684대의 23.3%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 비중이 23%를 넘은 것은 1988년(28.8%·26만1782대) 이후 처음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한 자릿수를 맴돌았고 2000년대 들어서도 10%대 중후반을 유지하다 2021년 22.3%로 16년 만에 20%대를 회복했다. 이후 2022년 21.5%, 2023년 22.6%로 상승하더니 올해 36년 만에 23% 고지를 밟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록한 165만2821대를 뛰어넘어 미국 연간 판매 대수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아이오닉5, EV9 같은 전기차가 미국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쏘렌토, 투싼을 비롯한 SUV의 하이브리드 모델도 인기”라며 “다양한 차종과 파워트레인을 선보여 소비자들이 취향에 맞는 차종을 고를 수 있도록 한 전략이 미국 시장에 먹혔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판매 증가는 부진했던 한국 내수 시장에서의 충격을 줄여주고 있다.

덕분에 올해 3년 연속 판매량 기준 ‘글로벌 3위’ 수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수년 내 2위 폭스바겐을 제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주력 시장인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반면, 폭스바겐그룹은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미국 완성차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스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 1~9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494만9486대)은 같은 기간 폭스바겐그룹 판매량(616만8491대)을 바짝 뒤쫓는다. 지난해 폭스바겐그룹(연간 기준 923만대)과 현대차그룹(730만대) 차이가 200만대 가까이 났던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이런 기대를 담아 최근 정 회장은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불가능한 도전을 돌파한 여정은 훌륭했다”며 “하지만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프런티어맨’ 정의선 회장

안목·실행력·투자 3박자 갖춰

물론 이 같은 실적 개선만으로 정 회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최대 강점은 단순히 실적을 개선시킨 게 아니라 현대차그룹을 ‘도전하는 회사’로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은 ‘프런티어(선구자)’다.

여기에 시장 트렌드를 꿰뚫는 안목과 빠른 실행력, 미래를 준비하는 과감한 투자가 현대차그룹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분석도 덧붙여진다. 정 회장은 평소에도 수시로 임원들로부터 1대1 보고를 받고,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집중한 것도 주효했다. ‘가성비’로 승부해서는 중국 차를 이길 수 없다고 보고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덕분에 현대차·기아는 ‘할인 없는 브랜드’가 됐고 제네시스는 미국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대접을 받게 됐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 연구조직 구성도 바꿔놨다. 그가 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현대차 연구조직은 AVP(차량 관련 소프트웨어)본부, PBV(목적기반차량)센터, 로보틱스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 회장이 취임하기 전인 2020년에는 섀시·보디·파워트레인 담당처럼 조직이 차량 하드웨어별로 나뉜 전통적인 구성이었던 것과 달라졌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 투자에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2022년 4010억원을 투자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포티투닷(42dot)’을 인수했다. 포티투닷은 센서가 아니라 카메라와 이를 운영하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한다. 2025년에는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엔진과 변속기가 중심인 자동차 시대에서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된 이동 장치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차 기술 투자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준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 8월 중장기 전략 발표에서 엔진이 배터리를 충전해 최대 주행 거리가 900㎞ 이상인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판매가 부진해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올 들어 보급형 전기차를 선보이고 하이브리드 차량을 강화하는 등 발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넓혀 대응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시장 경쟁의 무게추가 ‘가격’으로 옮겨 가는 분위기에서 현대차·기아는 올해 캐스퍼 일렉트릭, EV3 같은 보급형 전기차를 줄줄이 공개했다.

하이브리드 시대가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하이브리드 차종 생산도 늘렸다.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도 당초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지었지만 시장 변화를 빠르게 읽어낸 정의선 회장 판단에 따라 하이브리드 차량과 EREV 생산도 병행하게 됐다.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가 “정의선 회장은 현재 과도기에 놓인 자동차 산업 전환의 과제와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리더”라고 평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다운 기자 [email protected]]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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