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냐 유예냐…협치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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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 개미들이 보고 있다


모처럼 여야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시행을 앞두고서다.

윤석열정부와 여당이 폐지 쪽으로 당론을 정한 가운데 야당에서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 일부 의원 중심으로 ‘유예’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법안에 변화가 일 수 있지 않겠냐는 예상이 솔솔 피어난다.

금투세 뭐길래?

2020년 여야 합의로 통과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조세 대원칙이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실현되는 소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취지의 제도다. 협소하게는 주식 투자를 통해 번 돈 중 일부는 세금을 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이 강한 이유는 국내 상장 주식·펀드 등에 투자해 번 돈(양도차익으로 인한 금융소득)이 5000만원을 넘기면 총 22~27.5%의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 합산세율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소득 기준 ‘3억원 이상 이하’ 여부 때문이다. 3억원 이하면 22%, 그 이상이면 27.5%의 합산세율을 내야 한다. 해외주식, 비상장주식, 채권, 파생상품의 경우 금융소득이 250만원을 넘기면 과세 대상이 된다.

애초 이 법은 지난해 1월 1일 시행됐어야 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출범 후 2년 유예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기간이 올해 말로 다가옴에 따라 다시금 ‘유예’ 혹은 ‘폐지’, 이도 아니면 ‘보완 후 시행’ 등으로 여론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시종일관 ‘폐지’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미 국회 통과(2020년)가 된 사안이라서다. 특히 현 집권여당이 야당 시절 이 법 시행에 사실상 뜻을 보탰다는 점도 걸린다.

법 통과 당시 쟁점은 사실 금투세는 아니었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벌든 잃든 무조건 내야 했던 증권거래세가 너무 과하다는 여론이 강했다. 그래서 증권거래세를 0.23%에서 올해 0.18%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고(내년 0.15%) 대신 돈 번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법 시행 일자가 다가오니 증권가, 이 중에서도 개인 투자자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쉽사리 이 법 강행을 마냥 주장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가 펼쳐졌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 내내 쟁점이 된 사안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표 후보자가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유예안’을 꺼내 들면서 금투세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투세 쟁점 4가지

개인 투자자·증시·세수 등 영향

금투세 도입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요 쟁점은 네 가지다.

우선 ‘1400만 개인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다. 금투세 도입 찬성론자들은 금투세 대상자가 극소수기에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라고 주장한다. 기획재정부는 금투세를 낼 개인 투자자를 약 15만명, 전체 투자자 1% 수준으로 추정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2021년 주식으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낸 투자자는 연평균 6만7000명, 전체 투자자의 0.9%에 불과하다. 주식으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내기 위해선 막대한 시드머니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른바 ‘슈퍼 개미’라고 불리는 큰손 투자자에만 적용되는 세금이라는 논리다.

금투세 도입 반대론자들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간접 피해’를 우려한다. 슈퍼 개미들이 금투세 때문에 한국 증시를 빠져나가면 결국 증시 변동성이 커져 개인 투자자도 피해를 보게 된다는 주장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위 1% 주식 부자가 갖고 있는 주식이 우리나라 전체 상장 주식의 한 20~30% 정도 된다”며 “이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면 주가가 폭락하고 당연히 개인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반대론자 주장은 두 번째 쟁점인 ‘국내 자본 시장에 미치는 증시 충격’에 대한 문제와도 이어진다. 금투세 도입이 국내 자본 시장 매력도를 떨어뜨려 슈퍼 개미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 외국인 투자자까지 미국 증시 등으로 대거 이탈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7월 18일 금투세 폐지 토론회에서 “한국 증시보다 미국 증시, 즉 ‘국장보다 미장’이라는 용어가 있고, 미국 증시로 대이동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금투세 시행은 자본 유출을 폭발시키는 트리거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투세 도입 찬성론자들은 ‘과도한 공포감’이라고 반박한다. 금투세 시행이 4년 전부터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금투세 도입 영향이 이미 증시에 반영돼 있다는 주장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8월 8일 자신의 블로그에 “외국인이나 큰손 투자자가 증시를 이탈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공포 조장”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거주지 본국에서 세금을 내고, 50억원 이상 투자하는 큰손들도 이미 양도소득세를 내고 있기 때문에 금투세 때문에 증시를 이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의견이 이어진다. 의제취득가액 제도 등 금투세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줄일 ‘완충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의제취득가액 제도는 금투세 시행 전까지 누적된 미실현이익에 대해선 비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번 금액은 리셋하고 금투세가 적용되는 시점부터 세금을 매긴다는 뜻이다. 아울러 금투세는 이월공제라는 ‘당근책’도 두고 있어 세 부담이 조정된다. 이월공제는 5년 동안 모든 투자 손실과 이익을 감안해 세 부담을 조정하는 제도다. 금투세가 도입돼 이월공제가 적용되면 한 해 이익이 나도 5년간 손실분까지 감안해 과세액을 정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게 될 수 있다.

세 번째 금투세 쟁점은 ‘이중과세’ 문제다. 정치권은 애초 금투세 폐지를 전제로 증권거래세를 내렸다. 증권거래세는 0.23%에서 지난해 0.2%, 올해 0.18%까지 인하됐으며, 내년 0.15%로 내린다. 여기서 0.15%는 농어촌특별세(농특세) 명목으로 부과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증권거래세는 폐지된 것이라고 진 정책위의장은 주장한다. 하지만 금투세 도입 반대론자들은 0.15%가 남아 있는 한 엄연히 이중과세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증권 거래 과정에서 농특세를 걷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도 여전하다. 농특세는 농어민 지원에 쓰이는 세금이지만 증권거래세, 종합부동산세 등 전혀 관계없는 세목과 연계해 걷는 데다 농가소득은 해마다 늘고 있어 폐지 목소리가 높다. 통계청 농가경제 조사에 따르면 농가소득은 2022년 기준 평균 4615만원이다. 2012년 3103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10년 새 48.7% 상승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거래세로 부과되는 농특세는 폐지돼야 한다. 농민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과 세금을 포기할 수 없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유지됐을 뿐”이라며 “농특세를 증권거래세 안에 넣는 건 어불성설이고 과세 논리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한 과세 방법이며 정책적 시효도 다했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 쟁점은 ‘세수’ 문제다. 찬성론자들은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 우려가 커진 가운데, 금투세 시행이 무산되면 세수 공백 문제에 봉착한다고 우려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내년부터 금투세가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반대론자들은 “금투세를 시행하면 역설적으로 세수가 줄고 자본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투세를 도입하면 이중과세로 인한 조세 저항에 부딪혀 증권거래세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한국조세정책학회장)는 7월 18일 토론회에서 “금투세 도입으로 예상되는 세수 증가분은 연간 1조7000억원이지만 증권거래세 폐지에 따른 세수 감소는 연평균 6조7000억원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8월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신사옥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 방송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투세 도입 놓고 정치권 갈등 격화

‘유예·보완’도 검토하는 민주당

한편 금투세 도입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바짝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자본 시장 위축이 우려된다며 금투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금투세 폐지 방안이 담겼고,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 법안을 당론으로 제출한 상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8월 7일 “금투세 강행은 우리 스스로 퍼펙트스톰(여러 악재의 복합적 작용으로 인한 큰 위기)을 만드는 것”이라며 민주당에 금투세 폐지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공개토론을 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당 차원에서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최근에는 미국발 ‘증시 폭락’ 상황과 맞물리면서 예정대로 시행, 일시적 유예, 완화 입장이 나오는 등 금투세를 둘러싼 당내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 금투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후보는 8월 13일 당대표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현재 주식 시장이 너무 나쁜데 원인이 주로 정부 정책의 잘못 때문이라 지금 상황에서 금투세를 강행하기보다는 유예하거나 일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당내에서 금투세 시행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8월 13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 주장을 이해는 한다. 상당한 조세 저항이 있다고 보이니 조세 조항을 조금 누그러뜨리기 위해 공제 한도를 조금 더 높이는 건 어떠냐는 의견이다. 이해는 한다”면서도 ‘시행’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8월 18일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의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 11일 대전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금투세에 170명의 의원이 모두 같은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면서 적정한 시기에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금투세 도입 논의에 있어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김우철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이 금투세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이해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금투세법 전면 개정 등 제3의 대안을 마련하는 등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호 기자 [email protected], 조동현 기자 [email protected]]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3호 (2024.08.21~2024.08.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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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에서 금융, IB, 슈퍼리치, 스타트업 등등 매경프리미엄에서 '재계 인사이드'를 연재하며 돈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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