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새벽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시도’ 규탄 집회에는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친윤계 의원이었다. 그런데 시위대 맨 앞줄에 선 김기현(울산 남을)·나경원(서울 동작을) 의원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나·김 의원은 현 정부 출범 후 각각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와 22대 총선 출마 문제를 두고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대표 도전을 접거나,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김·나 의원은 “윤 대통령 개인이 아닌 헌법 가치 수호를 위해 대통령 관저 앞 집회에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나 의원은 7일 인터뷰에서 집회 참석 이유와 관련해 “국가적인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헌법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다”고 했다. 나 의원은 특히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된 과정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진영 갈등이 더욱 커지면서 국론 분열이 심화할 것”이라며 “‘Due process(적법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고, 이를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 가치의 본령”이라며 “공수처라는 수사 주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 영장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 시도를 두고 볼 수 없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3년 후배인 나 의원에 대해 과거 사석에서 “내가 업어 키운 후배”라며 애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나 의원을 두 차례나 특사로 해외에 파견했고, 2022년 10월에는 원외(院外)였던 그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 임명했다. 하지만 2023년 3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나 의원이 출마 뜻을 내비치면서 윤 대통령과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윤 대통령과 친윤계 핵심 그룹은 나 의원 당대표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도 나 의원이 뜻을 안 꺾자 대통령실은 나 의원을 공직에서 해임했다. 나 의원은 결국 당대표 도전 뜻을 접었고, 작년 4월 총선에서 당선돼 원내로 복귀했다.
나 의원은 “몇몇 분이 문자 메시지로 ‘윤 대통령이 당신을 얼마나 핍박했느냐’라며 관저 앞 집회에 가지 말라고 하더라”며 “하지만 집회에 참석하면서 개인적인 감정은 다 잊었다”고 했다. 그는 헌재를 향해서도 “절차적 정당성과 재판 속도전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며 “헌법적인 절차를 차분히 따라감으로써 헌재의 권위와 중립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나 의원은 “미국도 닉슨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때 상·하원에서 1년 넘게 조사하며 사실관계부터 따져봤다”며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증거 자료로 언론 기사 63건만 첨부돼 있고 국회 자체 조사보고서 하나 없다. 이렇게 속도전으로 탄핵이 추진되는 게 민주주의 법질서에 부합하고 국정 안정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 의원도 본지에 “대통령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남동 집회에 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 내란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며 체포 영장 등을 둘러싼 법적 문제를 국민에게 보여주려면 관저 앞 집회 참석이 필요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빼려는 것과 관련해 “팥빵이라면서 팥이 없는 빵을 팔아놓고 환불도 안 해주겠다는 것”이라며 “헌재가 답을 정해놓고서 속전속결로 탄핵심판을 진행해선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친윤 핵심 그룹이 나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를 접은 후 당대표로 세운 사람이 ‘당정(黨政) 일체’를 내세운 김 의원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임기(2년)를 절반도 못 채우고 9개월 만인 2023년 12월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그해 10월 치른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하자, 여권에서 김 의원을 비롯한 친윤 핵심들의 총선 불출마 요구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도 김 의원에게 불출마해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의원은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의원은 “여러 가지 일로 윤 대통령과는 좀 복잡한 사이”라며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 동맹”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인 김 의원은 “가치를 지키느냐를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대통령 측에서 6일 관저 앞 집회에 나온 의원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는데 의원들의 진심이 오해를 사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사양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