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가는 동대문 의류상가… 2653곳 중 370곳만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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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31. 오전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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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타일’ 가보니 공실률 86%
지난 29일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의류 도·소매 종합 상가 ‘맥스타일’에서는 옷을 둘러보는 손님이나 상인들과의 흥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가 대부분이 텅 비어 공실률이 86%에 달했다. 상인들은 “온라인에 밀려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되는데, 고금리·고물가 폭탄까지 겹쳐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코로나 사태로 장사가 안 됐을 때도 단골들은 여윳돈이 생기면 옷 한 벌씩은 해갔어요. 그런데 요즘은 연락해보면 돈 생겨도 이자 갚거나 생활비 보태는 데 급급하다고 하네요.”

지난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에 있는 의류 도소매 종합상가 ‘맥스타일’ 1층에서 만난 상인 김모(68)씨는 진열 중인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여성 의류를 도매와 소매로 파는 그는 “코로나 때는 매출이 반 토막 났는데, 지금은 3분의 1 토막”이라며 “매주 물건 떼러 오던 대구 옷가게 사장님을 몇 주째 못 봤다”고 했다.

이날 지하 1층~지상 8층짜리 맥스타일 상가에서 영업을 하는 층은 지하 1층과 지상 1·3층 정도였고, 그마저 절반은 ‘공실’이었다. 점포들이 모두 빠져나간 2층으로는 에스컬레이터도 가동되지 않았다.

그래픽=양진경

맥스타일이 있는 동대문패션타운은 국내 최대 패션 관광 특구로, 중저가 의류를 찾는 국내외 소비자와 보따리상들로 발 디딜 틈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의 부상과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맞아 상가마다 공실률이 높아졌고, 올해 들어서는 누적된 고금리·고물가 폭탄에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는 맥스타일 내 점포 2653곳 중 공실률이 86%라고 밝혔다. 370곳 정도만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인근 상가인 ‘굿모닝시티’ 등도 공실률이 70%에 달한다.

코로나 이후 고금리·고물가 늪에 빠진 내수 부진이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과 2023년 물가는 각각 5.1%, 3.6%씩 올랐고, 기준금리는 1년 8개월째 연 3.5%를 유지하고 있다. 올 들어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둔화되긴 했지만, 2년 넘게 누적된 물가 부담에 소비자들의 지갑은 굳게 닫혀 있다.

소매판매 9분기째 ‘마이너스’...”힘 없는 소비”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대표적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는 2분기(4~6월)에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지난 2022년 2분기(-0.2%)부터 9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으로,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7월 소매판매도 1년 전보다 2.1% 줄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비가 전반적으로 힘이 없는 모습으로, 전반적으로 당초 예상에 못 미치는 흐름”이라고 했다.

내수 대표 업종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두 업종 생산은 각각 1년 전보다 0.6%, 3.0% 감소했다. 도·소매업은 8개월째, 숙박·음식점업은 6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등 수출 호조에도 내수 부진이 두드러진 탓에 7월 전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4% 줄면서 5월(-0.8%), 6월(-0.1%)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2022년 8~10월 이후 21개월 만이다.

직격탄 맞은 문구점·화장품·옷가게 “재고 처리만이라도”

‘전문 소매점’으로 분류되는 사무용품이나 화장품, 옷 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내수 부진의 최대 피해자다. 지난 1~2분기 ‘전문 소매점’ 소매판매액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8%, 2.3% 감소했다. 전문 소매점 매출이 2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한 것은 코로나가 시작된 지난 2020년 3~4분기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이런 점포들은 장사를 접고 싶어도 잔뜩 쌓아 놓은 재고 탓에 전전긍긍하는 처지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문구·완구거리에서 두 달째 ‘재고 처리’ 현수막을 붙여 놓고 있는 문구점 사장 정모(68)씨는 “일단 싼값에 재고를 빨리 처리하려고 현수막까지 걸었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어 두세 달은 더 버텨야 할 것 같다”며 “쌓인 물건들을 정가로 치면 족히 6000만원은 될 텐데, 2000만원에도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내수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로 번 돈을 국내 투자로 연결하고, 노동시장 이동성도 확대해 일자리와 실질 임금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금리를 낮춰주거나 재정을 투입해 할인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는 내수를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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