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모아 정승같이 쓰는 청년들… ‘앰비슈머’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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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8.24. 오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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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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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MZ세대 소비 트렌드

※다음 20대 후반 직장인 ‘A씨’ ‘B씨’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 보시오.

A씨: 저녁 한 끼에 34만원을 쓴다. 주중·주말 할 것 없이 1박에 50만원이 넘는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수영하는 것이 낙이다. 근사한 곳에서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땐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낀다. 이런 ‘플렉스(FLEX·과소비)’를 두세 달에 한 번 한다.

B씨: 편의점에서 1950원 하는 2L 생수 살 돈도 아깝다. 집에서 20분 거리인 ‘땡땡 마트’에 간다. 같은 생수를 약 64% 저렴한 700원에 살 수 있으니. 더 바를 수 없을 때까지 뭉뚝해진 립스틱을 붓으로 바닥까지 긁어 바르고, 보랭(保冷) 텀블러 2개를 준비해 집에서 ‘모닝 커피’는 물론 ‘오후 커피’까지 싸간다.

A씨를 보며 “요즘 젊은 애들은 돈 무서운 줄 몰라” 하고, B씨를 보며 “며느리, 사위 삼고 싶은 또순이 청년”이라 생각했다고? 놀랍게도 A씨와 B씨는 같은 사람이다.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소비 형태를 보이는 그는 ‘아껴야만 잘 살지만 아끼고만 살 수는 없는’ 젊은 층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을 양면성(ambivalent)과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앰비슈머’(Ambi sumer)라 부른다.

요즘 젊은 직장인은 돈 아끼려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도 ‘쓸 땐’ 통 크게 쓴다. 사진은 일명 ‘도시락 챌린지’. /인스타그램

한 푼씩 아껴 청담동 식당으로


직장인 이모(32)씨의 가계부 지출 패턴은 대략 이렇다. ‘月: 0원’ ‘火: 4800원’ ‘水: 0원’ ‘木: 5100원’ ‘金: 2800원’… (월말) ‘土: 410만원’(?). 대표적 앰비슈머다. 평소에는 도시락까지 싸 다니며 ‘(하루) 무지출 챌린지(도전)’를 하지만, 동경해 온 명품백 등을 구매할 땐 아낌 없이 ‘지른다’. 이씨는 “아끼고만 살 거면 돈을 왜 버나,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라며 “하지만 마찬가지로 내일 ‘급전’이 필요할 수 있으니 택한 방법”이라고 했다. 나름 합리적.

앰비슈머들은 우선순위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후순위에는 최대한 돈을 아낀다. 직장인 김모(31)씨도 마찬가지다. 김씨의 우선순위는 “고급스러운 경험”. 그는 10만~20만원짜리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 대신 1000~2000원을 꼼꼼히 따져 가며 1만원대 로드숍 화장품을 사고, 30만~40만원대 브랜드 옷을 사는 대신 홍대나 신촌 상가에서 2만~3만원짜리 ‘보세’ 옷을 산다.

하지만 한두 달에 한 번은 같은 성향을 가진 지인 대여섯과 만든 ‘계(契)’에서 고급 리조트에 가거나, 청담동의 1인 30만원짜리 고급 소고기 오마카세집에 간다. 홀로 저녁을 먹을 땐 3500~5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이지만, 휴가 땐 반드시 해외여행을 간다. 김씨는 “내 이런 모습을 모르는 회사 동료들이 가끔 ‘옷에 돈 좀 쓰라’며 핀잔을 주지만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한다”며 “고급 옷보다 고급 경험에 돈을 쓰는 게 내겐 더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20~3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익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 ‘거지방’ ‘무지출 챌린지’도 이런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1995~2004년생’ 같은 입장 조건이 붙은 방에서는 ‘700원짜리 생수를 샀다’는 말에 “물 사는 돈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 “은행 정수기 이용하면 되는데 물을 사서 먹느냐”는 핀잔이 쏟아지지만, 정반대 성격의 ‘허세방’ ‘플렉스방’ 등에는 “고생 끝에 차 뽑았다”며 고급 외제차 브랜드의 차 키 인증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NH농협카드의 ‘소비 트렌드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명품을 소비한 20~30대 소비자는 전체의 63%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고?


‘버는 족족 다 쓴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며 ‘어르신’(?)들에게 손가락질받은 일부 20~30대 소비 트렌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하지만 이런 소비 성향 역시 바뀌고 있다. 우선순위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한 푼도 안 쓰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젊은이도 늘고 있는 것.

“욜로하다, 골로 간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최근 취업 사이트 알바천국이 Z세대 537명에게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묻자 10명 중 7명(71.7%)이 ‘욜로족’ 대신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요노족’을 지향한다고 답했다. ‘요노(YONO·You Only Need One)’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구매는 최대한 자제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품질 좋은 ‘똘똘한 한 녀석’을 골라 오래 사용하거나, 아예 소유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빌려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MZ ‘무소유’ 세상의 도래인가?

이런 트렌드는 세계적 추세다. 미국 CNN은 최근 “욜로 경제가 요노 경제를 만났다”며 “코로나 이후 ‘자유 소비 파티’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층이 치솟는 물가를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라며 “그 와중에도 순간의 행복은 포기하기 어려운 MZ 세대의 특징이 ‘앰비슈머’와 ‘요노’로 양분돼 나타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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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유미 기자입니다. 바다를 사랑합니다. 간다간다, 뿅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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