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모든 걸 바꾸겠지만, 경제성장 가속하는 건 당장 보기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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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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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김지희 카이스트 교수가 말하는 인공지능과 성장

2022년 11월 말 챗GPT가 첫선을 보인 이후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인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경제학계에선 AI가 반도체·컴퓨터 같은 관련 산업뿐 아니라 전체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로 앞으로 10년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7%, 즉 세계 GDP가 100조달러 정도이니 7조달러(약 9700조원)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선진국 경제가 매년 0.5~3.4%포인트 성장하면서, 글로벌 GDP는 17조1000억~25조6000억달러(약 17~2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는 AI 영향으로 글로벌 GDP가 앞으로 10년 동안 0.93~1.16%쯤 완만하게 늘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AI가 성장과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김지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전기, 인터넷 등 혁신 기술도 성장 확산까지 영향을 주는 데 30년 가까이 걸렸다”며 “생성형 AI 같은 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을 가속하는 정도도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가 최근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 교수는 김지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전기, 인터넷 등 혁신 기술도 성장 확산까지 영향을 주는데 30년 가까이 걸렸다”며 “생성형 AI 같은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정도도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박상훈 기자

◇ 기술 혁신과 성장

- 생성형 AI를 과거 혁신 기술과 비교하면.

“이런 기술들을 경제학에선 범용 기술, 즉 General-purpose Technology라고 부른다. 이런 기술은 특정 분야가 아니라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특징이 있다.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 기술이 계속 나오게 된다.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끌어낼 수 있다. 증기기관은 1차 산업혁명, 전기는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은 3차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생성형 AI는 누구나 하는 기본 업무인 글쓰기와 콘텐츠 생성을 도와줘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생성형 AI 기술을 더 잘 구동하기 위한 새로운 반도체, 클라우드, 로보틱스 기술 등 연관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걸 봐서, 이 기술이 더 많은 기술을 상호 발전시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생성형 AI를 범용 기술로 볼 수 있다.”

- 범용 기술은 성장을 가속했나.

“2차 산업혁명 후 인류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서 기술 발전의 혜택을 알뜰히 챙겼을 미국 경제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수업 때 학생들에게 물으면 매년 10%, 20%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150여 년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매년 평균 2% 성장을 지속했을 뿐이다. 가끔 가속이 붙으면 4~5% 성장도 했지만, 결국 2%로 안정화됐다. 기술이 성장을 가속하는 게 생각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2% 성장하면 35년이 지나면 경제 규모가 2배가 된다. 길게 보면 상당히 빠른 성장이라 볼 수 있다.”

- 혁신이 사라져 미국 성장이 정체됐다고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 회복이 예전처럼 빠르지 않자 미국의 성장이 끝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혁신이 사라져 미국 성장도 정체됐다고 했다.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거대한 침체(great stagnation)란 개념을 꺼냈다. 코웬은 과일 따는 비유를 써서 낮은 곳에 있는 기술은 우리가 다 따서 앞으로 기술 개발을 통한 성장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특히 챗GPT가 나온 즈음부터 AI 혁신을 누구나 인식하게 됐다. 코웬도 요즘은 ‘거대한 침체는 끝났다’고 얘기한다.”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 /조선일보DB

◇ AI는 성장을 가속화할까

- 생성형 AI가 성장을 추동할까.

“범용 기술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성장이나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로 측정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는 것이다. 그 기술이 구석까지 퍼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는 상업적으로 쓸 수 있게 발명된 뒤 성장 효과를 보기까지 30년쯤 걸렸다. 실제 공장에 전선이 들어가고, 전기로 돌아가는 기계들이 만들어지고, 공장 구조도 전기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바뀌는 데 그 정도 걸렸다는 것이다. 인터넷도 1990년대 퍼지기 시작했지만, 경제학계에선 2010년대까지도 ‘인터넷의 경제 효과가 잘 안 보인다’는 말이 많았다. 최근 와서야 인터넷을 경제 활동 곳곳에서 생산성 향상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AI가 모든 걸 바꾸겠지만, 아직 생성형 AI가 성장이나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실제 영향을 숫자로 얘기하긴 이르다. 다만 다양한 추정은 나온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AI 영향 추정의 차이가 크다.

“AI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하려면 우선 일을 업무 단위로 쪼갠 후 그중 몇 퍼센트가 AI의 영향을 받을지 가정하고 추려내야 한다. 업무가 얼마나 AI로 대체될지, 생산성 증가에 도움을 받을지 따지는 것이다. 가정에 따라 영향이 다르게 추정된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보다 AI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생각한다.”

- 경제학자들 전망은.

“작년 시카고대에서 유명 경제학자 50명을 설문 조사했다. ‘앞으로 20년간 AI가 경제성장에 주는 영향이 지난 20년간 인터넷이 준 영향보다 더 클 것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경제학자 61%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고, 20%만이 그렇다고 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당장은 그 영향이 잘 보이지 않고 영향이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AI 선진국인 미·중만 좋지 않은가. 한국 성장에도 도움 될까.

“개발도상국은 미·중의 AI 기술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은 AI 선진국 대열에 끼어 있다고 봐야 한다. 미·중처럼 자본력과 데이터로 밀어붙이는 기반 기술 분야는 약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 디바이스 기술, 초기 AI 기술 등 AI 생태계에서 잘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고 있다. 과거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 등의 혁신 기술 태동기엔 한국이 낄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AI는 그에 비하면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기술 격차가 어느 정도 있긴 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 방향성을 잘 정해서 안정적 투자가 이뤄진다면 한국은 생산성 향상과 성장에 분명히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학력 근로자, AI 도움받아 일자리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초 선진국 일자리 60%가 AI에 강하게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김지희 교수는 AI가 인간 일자리를 대신하겠지만, 저소득층이 AI 도움으로 예전엔 얻지 못한 지식 기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텐데.

“과거 자동화 기술은 비교적 저학력 직군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AI는 인지 기능을 보조할 수 있어 영향이 다를 수 있다. 특히 AI는 특정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인지 능력이나 학습 능력을 낮춰 저학력 노동자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정원사를 예로 들어 보자. 예전엔 정원사가 식생을 다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AI에 물어보면서 물을 얼마나 줘야 하고,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정원사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계, 법조계, 의사 등 고학력 고소득 계층의 일이 대체될 수 있다는 것도 과거 자동화와는 다르다.”

―AI가 새로 만드는 일자리는.

“이미 AI가 새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미국, 유럽에선 AI를 규제하거나 AI 모델의 윤리적 문제나 오류를 찾아내는 일자리 등이 생기고 있다. 데이터 기반으로 발전하는 AI 기술 특성상 AI의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만드는 직업도 생겼고 점차 확대될 것 같다. 고고학자처럼 숨어 있는 데이터를 찾아내 AI에 주는 직업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AI는 불평등을 심화할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AI가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의견이 다소 많다. AI를 장악한 자본가들이 이득을 모두 가져가 자본과 노동 소득의 격차가 커질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저학력 근로자가 AI 도움으로 새 일자리 기회를 갖게 되면 불평등이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AI 발전을 불평등을 완화하는 쪽으로 유도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생성형 AI

생성형 인공지능(AI)은 AI의 일종으로 대화, 이야기, 이미지, 동영상, 음악 등 새로운 콘텐츠와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 생성형 AI는 사람이 만든 콘텐츠의 데이터 집합에서 패턴과 관계를 학습해 새 콘텐츠를 만든다.

:김지희 교수는

김지희 교수는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경영과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로 경제성장론을 연구하고 있다. 2021년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커스를 기려 만든 루커스상을 소득 불평등 관련 논문으로 받았다. 인공위성 사진을 기반으로 경제지표를 개발하는 AI 기술 개발에도 참여해 작년엔 AI로 북한의 경제 발전 지도를 제작,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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