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플라스틱 박스, 냄새... 서울 야생동물센터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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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5. 오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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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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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어 악취 진동
공간 좁아 박스 하나에 두세 마리씩
직원들 근무환경 열악

“좁은 공간에서 동물들이 서로 싸우며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아파요.”

“재활·야외 적응 훈련시설의 부재로 방생 준비를 못해 동물들이 폐사(斃死)될 때마다 좌절감을 느껴요.”

서울시야생동물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플라스틱 박스 속에 갇힌 동물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서울 시내 유일 야생동물구조센터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는 지난 2017년 78평 규모의 서울대 수의대병원의 반지하 창고를 개조해 문을 열었다. 하루에도 20~30건 정도의 신규 동물이 내원한다. 현재 센터에는 멧비둘기, 너구리, 고라니 등 비교적 흔한 야생동물부터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새매 등 천연기념물까지 동물 총 198마리가 진료를 받고 있다. 센터가 개원한 2017년 입소 건은 293건이었으나 지속적으로 입소 동물이 증가해 지난 2023년 1784건에 이르렀다. 작년 기준 전국 17개 야생동물센터 중 서울야생동물센터의 구조 건수는 3위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진료처치실의 케이지 하나에 까치 여섯 마리가 함께 수용돼 있다./장윤 기자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진료처치실의 케이지 하나에 소쩍새 세 마리가 함께 수용돼 있다./장윤 기자

문제는 늘어나는 입소 동물에 비해 센터 공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동물 한 마리당 케이지 하나를 쓰는 게 원칙이지만, 비좁은 공간 탓에 센터에 비치된 케이지는 50개뿐이다. 진료처치실 내 폭 50cm 정도의 케이지들에는 새들이 두세 마리씩 수용되고 있다. 최석균(29) 재활치료사는 “좁은 공간에서 동물 여러 마리가 먹이경쟁 싸움을 하다 보니 다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전 직장인 서울대공원에서는 넓은 공간 여러 군데에 먹이를 뿌려줘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 복도에 동물들이 수용된 플라스틱 수납박스가 늘어서 있다./장윤 기자

서울시야생동물센터 복도에 동물들이 수용된 플라스틱 수납박스가 늘어서 있다./장윤 기자

늘어나는 동물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센터 측은 복도에 옷 수납용 플라스틱 박스 20여개를 3층으로 줄지어 쌓아 동물들을 받고 있다. 센터 직원들은 동물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박스에 구멍을 뚫고 동물들을 넣었다. 이 박스들 안에도 동물 두세 마리가 함께 수용되고 있다.

반지하 창고를 개조해 만들어진 센터에는 창문이 없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영덕(28) 수의사는 “동물들이 분변을 계속하고 먹이 냄새도 심하다보니 환기가 잘 돼야 하는데, 현재 센터에는 창문이 없어 환풍구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 수의사는 “센터 측에서 하루에 두 번씩 케이지들을 청소하는데도 냄새가 워낙 심하다 보니 ‘센터가 불결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서울시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비행장이 없다. 센터 측은 하루에 한번 센터 복도에 비행용 장애물을 설치하고 새들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고 있다./장윤 기자

센터에는 야생동물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자연 적응 훈련장도 부족해 방생 준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센터에는 새들이 많지만 실내 비행장이 없어서, 센터 측은 센터 복도에 비행용 장애물을 설치하고 새들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고 있다. 연성찬 센터장은 “대형 맹금류는 최소 높이 6m, 가로 6m, 세로 30m 크기인 비행장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물새들을 위한 전용 훈련시설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센터 근무자들은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 센터에서 일하고 있지만, 센터의 열악한 환경이 사명감을 갉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서 수의사는 “일반 동물병원보다 월급을 훨씬 적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년에 센터 근무를 지원했다”며 “그런데 비좁은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지내는 동물들의 모습, 겨우 직원 여섯 명이 주말도 없이 동물 200마리를 돌보는 노동환경 등은 회의감을 들게 한다”고 했다.

키가 180cm인 최석균 재활치료사가 낮은 천장 밑으로 몸을 굽혀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 천장에는 '머리조심' 문구가 붙어 있다./장윤 기자

비좁은 공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동물뿐만 아니다. 반지하 창고를 개조해 만들어진 센터의 높이는 170cm가 조금 넘어 직원들은 온종일 허리를 굽히고 지낸다. 키가 180cm인 최 재활치료사는 “입사 초반 하루에도 너댓 번씩 머리를 찧었고, 작년 9월에는 머리를 크게 찧어 봉합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연 센터장은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중심부에 음식이 많기 때문에 서울야생동물구조센터는 야생동물 구조 건수가 많다”며 “서울야생동물센터의 확장·재건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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