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공화 전대에 외교관들 문전성시...세계가 “어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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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8. 오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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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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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포함 유럽·아시아 국가 소속 외교관들 일제히 밀워키行
도시 곳곳서 열리는 행사 참석, 트럼프 측근 접촉 시도

16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공식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맨 앞줄 오른쪽 끝) 전 대통령이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지난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격당한 후 ‘대세론’이 굳어지는 분위기가 되자, 각국의 외교관들도 앞다퉈 전당대회를 찾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16일 오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州) 밀워키에서 만난 한 유럽 국가 소속 외교관은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른바 ‘트럼프 측근’들이 참여하는 각종 외교·안보 정책 간담회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정책이 어떻게 될지 파악하는 게 우리 임무”라고 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장이 전 세계에서 온 외교관들로 북적이고 있다. 미 전당대회는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대통령 후보의 정치 파트너인 부통령 등이 지명되는 ‘국내 행사’다. 그런데도 이날 전당대회장 주변은 ‘다자(多者) 외교 무대’를 방불케 했다. 트럼프가 지난달 첫 TV 토론에서 완승한 데 이어 지난 13일 ‘피격 사건’까지 터지면서 ‘어대트’(어차피 대통령은 트럼프) 여론이 커지자 전 세계가 ‘트럼프 재집권’ 대비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에 적극 ‘어필’ 시작한 유럽

“이제야 조금 정신이 드나 보죠. 유럽은 이제라도 돈을 더 써야 합니다.” 보수당 소속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는 이날 밀워키 노스웨스턴 뮤추얼 타워에서 본지와 만나 “(트럼프 재집권에 대해) 유럽이 우려하는 걸 안다”며 “유럽 국가들은 우려만 하지 말고, ‘무임승차’를 중단하고 미국과의 방위 분담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연합(EU)은 이곳에서 워싱턴DC의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와 공동으로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다. 대중(對中) 견제를 고리로 유럽과 미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점을 트럼프와 공화당 진영에 어필하기 위해서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귀환에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이 흔들리지 않도록 트럼프와 공화당 진영에 ‘유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EU는 이날 ‘트럼프 2기’ 출범 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 너새니얼 모런 하원의원(텍사스주)을 연사로 초대했다. 행사장에는 트러스 전 총리를 비롯한 전·현직 외교관 정부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요바이타 넬리웁시에네 주미 EU대사는 “우리(유럽)는 미국의 최대 투자자다. 텍사스에서도 유럽이 엄청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넬리웁시에네 대사는 트럼프의 ‘피격 사건’에 대해서도 “너무 충격받았다”며 “민주주의에서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는 우리(미국·유럽)와 중국의 차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미·유럽 간의 밀접함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유럽 외교관들은 트럼프가 J. D. 밴스(Vance)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목하자 미·유럽 안보 협력 관계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밴스는 올해 초 연방 상원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600억달러(약 83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안 통과를 막는 데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고립주의’ 외교 정책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서유럽 국가 소속 외교관은 “밴스가 부통령으로 지명되면서 유럽이 받는 압박감은 배가 된 것 같다”며 “극단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유럽 입장을 설명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미 워싱턴 DC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전날 주최한 ‘정책 축제(policy fest)’도 각국 외교관들로 북적였다. 헤리티지는 차기 보수 정권의 집권 의제 및 인력들을 발굴하는 ‘프로젝트 2025′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 2025′를 통해 차기 보수 정권용으로 만든 900쪽짜리 정책 제언집 ‘보수의 약속(The Conservative Promise)’은 미 정가에서 ‘트럼프 2기 공약집’으로 통한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16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행사장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민석 특파원

‘로키’ 고수했던 한국도 발에 불똥… 밀워키서 외교전

한국의 상황도 다급해졌다. 트럼프 재임 시절 한미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 대북(對北) 정책 이견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트럼프가 재임할 경우 트럼프는 한국 정부에 또다시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안보·경제를 전방위로 압박할 수 있다. 외교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 대화를 재개하고 종전 선언처럼 윤석열 정부와 기조가 맞지 않는 협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그간 트럼프 측과의 직접 접촉을 자제해왔다. 현직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한 ‘균형 있는 접근’ ‘로키(low-key, 절제)’ 방식이다. 외신이 한국의 움직임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스텔스 모드’(stealthy manner)라고 묘사할 정도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선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조 바이든 현직 대통령은 고령 논란으로 휘청이는 만큼,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트럼프 측과의 접촉을 서둘러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날 조현동 주미 대사는 밀워키 전당대회를 찾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1기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 등이 연사로 나선 행사장을 찾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측에 한미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 등을 설명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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