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레이크를 못 밟더라” 급발진 주장 택시, 페달 블랙박스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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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전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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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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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발생한 급발진 주장 사고 차량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경찰이 1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급발진 여부를 수사 중인 가운데, 작년 발생한 급발진 주장 사고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급발진 주장 사고 관련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 2월 유럽연합유엔경제위원회(UNECE) 주관 분과 회의에 참석해 페달 오용 사고 영상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는 작년 11월 12일 오후 12시 52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주택가에서 발생했다. 65세 남성 A씨가 운전하던 전기 택시가 담벼락을 들이받았고, A씨는 “우회전 중 급발진으로 감속 페달(브레이크)을 수차례 밟았으나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는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했었고, 경찰은 페달 블랙박스 등 6개 영상을 수거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반전’이었다. 운전자는 담벼락 충돌 전까지 119m를 7.9초 동안 달리면서 한 번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다.

사고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 언덕인 곳에서 A씨는 우회전했다. 그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한 지점이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갑자기 언덕에서 택시가 안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밟으니 차가 확 튀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택시는 30m를 갑자기 빠르게 달렸다.

사고 당시 운전자의 페달 블랙박스 영상. 당황해 가속 페달을 계속 밟고 있다. /JTBC

이후 A씨는 “브레이크 페달을 몇 번이고 밟았는데 먹통이었다”고 했다. 블랙박스 영상 속 A씨의 발은 실제로 6차례 페달을 밟았다, 뗐다 반복했다. 문제는 이 페달이 ‘가속 페달’이었다는 점이었다.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졌을 때 A씨는 역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결국 차는 담벼락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즉, 7.9초 동안 A씨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뗐다 반복했다가, 가속 페달을 밟은 상태로 운전을 계속한 것이다. 충돌 직전 차량 속도는 시속 61㎞였다.

A씨는 지난 4일 유튜브 ‘김한용의 모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당시에는 급발진이라고 생각했다”며 “차가 진짜 이상했다”고 말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이상했다는 말이냐’는 물음에 A씨는 “근데 내가 브레이크를 못 밟더라?”라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급발진을 주장했던 택시기사가 블래박스 영상을 본 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유튜브 '김한용의 모카'

자동차 전문 기자인 김한용 모카 대표는 이에 대해 “A씨는 본인이 가속페달 밟은 걸 인정한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까지 엉뚱한 행동을 했다는 게 끝까지 믿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내가 운전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어떻게 저런 사고를 일으켰을까’라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흔히 생각할 때 (가속페달을) 밟았다가 차가 튀어 나가면 ‘어? 아니었군’ 하고 옮겨 밟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며 “일단 가속페달을 밟고 차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가 당황하게 되면 노련한 택시 운전사도 절대 이 페달에서 발을 쉽게 뗄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고가 페달을 오조작하는 운전자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믿는 운전자가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확증편향을 가지면서 본인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가속 현상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밟고 있는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는 연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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