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우리 친한 거 맞지? [사이공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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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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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트남에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뉴스에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짧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뉴스를 틀어놓고 있으면 이 나라의 이슈가 뭔지 대략 파악할 수 있지요. 그냥 단순한 저의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요.

공산당 정부 관련 뉴스에 이어 경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박항서 전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과 홍선 코참 회장 등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의 한국 방문 뉴스였지요. 찐 총리의 방한 일정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날아온 분들이었습니다.

베트남 V뉴스에서 보도 중인 팜 민 찐 총리의 한국 방문 뉴스. 베트남 호텔에 있는 TV를 촬영했다. /냐짱=이미지 기자

찐 총리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찐 총리는 공산당 서기장과 국가 주석에 이은 베트남 권력 서열 3위입니다. 지난 2022년 12월 한국과 베트남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뒤 이뤄진 첫 번째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이기도 하죠.

찐 총리의 방문에 국내 기업 총수들까지 나섰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등이 찐 총리와 면담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잇달아 베트남 투자 확대 계획을 내놓았지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일 서울 모처에서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트남관보

자, 그럼 우리는 이제 포스트 차이나로 성장하는 베트남에서 돈 벌 일만 남은 걸까요? 이건 조금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실용적이고 또 실용적인 대나무 외교

베트남은 소위 동남아 유일의 ‘친한파’ 국가입니다. 필리핀, 태국 등 일본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한국 기업과 브랜드에 더 친밀함을 표하는 국가라는 평가이죠.

대표적인 사례로 자동차 시장을 볼까요. ‘일본 차의 텃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에서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은 6위에 불과합니다. 필리핀에서도 도요타·미쓰비시·포드 등에 밀려 현대차는 8위를 기록하고 있고, 태국에서는 10위권에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베트남에선 현대차가 일본 브랜드인 도요타를 밀어내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에 등극한 기아차 점유율(11%)까지 합하면 베트남 자동차 시장의 30%를 현대·기아차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랩을 부르면 현대차가 해외 전략모델로 내놓은 소형차 i10이 부릉부릉 달려오지요. 우리로 치면 모닝 같은 외관인데, 오토바이가 도로를 점령한 베트남에선 복잡한 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데 최적인 크기입니다.

베트남 대형마트에 있는 한국 제품 코너. 배너에 한국 국기도 인쇄해놓았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그럼 뭐가 문젠가 싶으시죠? 문제는 베트남에 러브콜을 보내는 게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작년 9월 미국과 베트남이 지난 10년간 유지해 온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두 단계 높여 ‘포괄적 전략적 관계’로 격상했습니다. 중간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아예 건너 뛴 거죠.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전격 격상되자 중국이 달려왔습니다. 3개월 뒤인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에 방문해 양국 관계를 ‘미래 공유 공동체’로 발전시키고, 경제·안보·사회·문화 등 36개의 합의문까지 체결한 거죠.

잇따른 러브콜에 2023년은 베트남의 외교 원칙인 ‘대나무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던 한 해로 평가됩니다. 길고 지난한 베트남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도, 우리와 일본처럼 베트남 동해(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겪는 중국과도 ‘실리적’ 협력은 이뤄나가겠다는 것이니까요.

왜 갑자기 베트남이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됐을까요? 베트남을 저렴한 인건비와 이를 기반으로 한 생산기지가 있는 ‘포스트 차이나’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이런 러브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베트남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안보 요충지일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전략지로 꼽히죠. 이 때문에 지난 5월 프랑스 국방장관도 베트남을 찾아 양국 간 국방 협력 강화 의향서에 서명하고, 네덜란드도 작년 베트남과 국방·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온 찐 총리를 버선발로 맞이한 이유는 베트남이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핵심 국가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중국발 요소수 대란을 겪은 우리는 베트남 요소수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급한 불을 껐지요. 최근 베트남이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 국가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중국을 대체할 희토류 공급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이지요.

◇그래서, 우리 친한 거 맞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과 브랜드는 다른 국가보다 우위에 있을까요? 한국은 베트남의 가장 친한 친구일까요?

현재까지 한국은 베트남에 투자한 146개 해외국 중 가장 많은 금액(870억 달러·120조2340억원)을 투자한 ‘최대 투자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까지의 ‘누적’ 투자금액을 뜻합니다. 2023년 베트남 계획투자부에 따르면 2021·2022년까지만 해도 베트남에서 외국인 직접 투자액(FDI) 2위 국가를 유지했던 한국의 순위는 작년 5위까지 밀려났습니다.

베트남 호찌민 전경. 일본의 해외공적원조로 이뤄지는 공사들이 많아지면서 시내 공사 현장에 일본 국기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최근 투자를 늘리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일본 등입니다. 올해 상반기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가장 많이 한 국가는 싱가포르로 55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최대 투자국이 됐습니다. 전체 투자액 중 36.7%를 차지했지요. 일본이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은 베트남의 해외개발원조(ODA) 최대 공여국입니다. 베트남에 도로나 철도 같은 기간산업을 마련해주며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합니다. 전체 ODA 규모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죠. 일본에 대한 베트남의 호감도도 그만큼 높습니다. 호찌민의 경우, 한인타운은 시내 외곽에 있지만 일본인 거리는 도심에 있지요. 일찍부터 ODA를 위해 베트남에 파견된 일본인들이 도심지에 모여 산 덕분입니다. 올해 상반기 FDI 규모는 싱가포르, 일본에 이어 홍콩·한국·중국이 뒤를 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손을 내미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베트남 역시 선택지가 많아지는 모양새입니다. 대나무 외교라는 말처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국가의 러브콜을 거절하지 않지요.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이 악화하면서 한국 입장에서 베트남의 중요성은 더해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에 이은 3대 교역국입니다. 일본을 제친 지 오래이지요. 한국의 작년 대중 수출액은 1248억 달러로 전년보다 19.9% 줄어들었습니다. 대중 무역 수지는 181억 달러 적자로, 한·중 수교를 맺은 1992년 이후 처음이자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지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로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일행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찐 총리의 방한에서 우리 정부와 베트남 정부는 교역 규모를 내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8조원), 오는 2030년까지 1500억 달러(약 207조원)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놓았습니다. 베트남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아닌, 에너지와 광물 등 베트남의 자원을 활용해 우리 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입니다.

한국에 진출한 베트남 기업과 한국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모임도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5월 30일, 주한 베트남 경영 협회(BAViK)가 출범한 것이지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기업들의 공식 커뮤니티로, 한국과 베트남 간 투자 및 무역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 있는 베트남 기업 40개 회원사가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쯤 되고 보니 베트남은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친구인 거 같습니다. 너도나도 친하게 지내자고 손을 내밀고 있지요. 아직 한국이 베트남과 가장 친한 친구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베트남이 공부한다고 하면 책도 빌려주고, 책상도 내어줍니다. 우리, 계속 친할 수 있을까요? 친구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민간뿐 아니라 국가적인 전략도 필수겠지요.

기자 프로필

사회부 경찰팀, 법조팀, 주말뉴스부, 산업부 유통팀, 부동산팀, 자동차팀, 베트남 특파원을 거쳐 다시 산업부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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