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보다 작품 우선… 경영은 ‘디자인 노터치’

입력
기사원문
이영관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축적의 50년, 현대차의 기적]
슈라이어가 바꾼 디자인 개발 문화

2006년 스위스 다보스의 작은 호텔. 36살이던 정의선 당시 기아 사장(현대차그룹 회장)은 실무진과 만나 세계 최고 디자이너를 데려오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적자에 빠져 있던 기아를 정상화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런 기아에 세계적 디자이너가 오려고 할까 대부분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당시 정 회장은 ‘가성비는 좋지만 다른 브랜드를 모방한 차’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피터 슈라이어

그래서 기아의 안테나에 들어온 인물이 피터 슈라이어. 아우디, 람보르기니 등을 보유한 폴크스바겐그룹의 대표 디자이너로 뉴비틀, 골프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정 회장이 직접 독일로 날아가 그를 설득했다. 기아는 당시 대표이사 평균 연봉 수준이었던 100만유로(당시 환율로 약 12억원)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를 기아 디자인총괄책임자로 영입했다. 슈라이어가 자신의 연봉으로 제시한 수십만 유로를 오히려 웃도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세계적 디자이너였던 그에게 기아에 가는 것은 모험이었지만, ‘백지’에 자신의 색을 입혀 무언가를 새로 창조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00만유로의 베팅’은 현대차그룹 전체를 바꾸는 변화를 일으켰다. ‘직선의 단순함’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내놓은 박스카 쏘울(2008년), ‘호랑이코’ 그릴이 들어간 중형 세단 K5와 SUV 스포티지(2010년) 등이 연이어 국내외에서 히트를 쳤다.

슈라이어를 이어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여럿 현대차그룹에 잇따라 합류했다. 고급차 벤틀리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를 거친 카림 하비브 등이다. 이들은 고급차 디자인 요소와 미래차 IT 기술을 반영한 새로운 면모를 그룹 내에 불어넣고 있다.

슈라이어 이후 현대차 그룹의 디자인 개발 문화가 바뀌었다. 연공서열이 아닌 작품으로 승부하도록 시스템을 고쳤고, 출신 학교나 지역을 앞세운 파벌도 없앴다. 경영과 디자인도 철저히 분리, 경영진이 디자인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했다. 슈라이어는 2021년 퇴임,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