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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2016)가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첨 봤을 때 영화 내내 으르렁대는 야수 같은 에너지에 한 번 놀라고, 좌고우면 하지 않은 엔딩에 두 번 놀랐어요. 와, 이렇게 끝까지 밀어붙일수도 있구나. 이렇게 가차없을 수도 있구나. 이런 영화가 가능하다니.
결말에 다다르면서 “에이, 설마 이대로 맺지는 못하겠지”하면서 봤는데 그대로 가더군요. 전 그 가차없음이 좋았어요. 독립영화가 아니고 손익분기점이 수백만인 상업영화에서 그렇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 과연 앞으로도 그런 영화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다른 영화'를 만드는 감독. 제가 기억하는 김성수는 그런 감독이었습니다.
앞서 어느 레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서울의 봄' 시사 때 제가 “이 영화는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제가 엄청난 족집게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시간의 Y축은 몰라도 시간의 X축, 즉 동시기 개봉작은 최대한 찾아보니까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흥행 예측 작두를 탔다'고 한 어느 평론가 분하고 ‘노량’ 내기 해서 이겼답니다. 그 분은 ‘노량'이 천만 간다, 저는 천만 못 간다에 걸었거든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레터에서 ‘노량'의 음파 공격에 대해서 썼었죠. (노량 최종 성적은 457만입니다.)
‘아수라’에 감탄했던지라 ‘서울의 봄'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습니다. 달라지셨구나, 같은 감독이 맞나 싶었죠. (물론 ‘아수라’가 특이한 경우긴 하죠.) 저는 지금도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소장 역할이 지나치게 정우성스럽고 낭만화됐다고 생각하지만, 상업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를 확실하게 주는 영화라는 점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에 넷플릭스에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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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서울의 봄'으로 천만감독이 된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그 후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을까. 궁금해서 즐겁게 춘천으로 달려갔습니다. 원래 저는 배우보단 감독 인터뷰가 훨씬 좋아요. 세상에 없던 걸 창조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정말 흥미진진하거든요. 많이 배우게 되고요. 오오, 이런 생각을? 아아, 그래서 그런 장면이? 제가 질문하고 제가 심취합니다.
김성수 감독님은 말씀 중에 ‘마지막’(”마지막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반성’(”많이 반성했다”) ‘제 잘못'(“저 때문에 망쳤다”) 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시더군요. 의외였어요.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셔서 저도 같이 고개를 숙이게 됐고요. 원래 전 ‘영화가 망하면 감독 탓'이라고 생각하는데(배는 선장이 책임져야죠) 그래도 감독님께서 너무 “내 탓이오” 하시니까 말리고 싶어지더라고요.
김성수 감독님께서 “영화는 젊은이들의 예술”이라고 하셔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 워낙 젊을 때부터 청춘 영화를 만들어오셔서 그런지 이제는 더 이상 30대의 심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숙하게 느끼셔서 그런 게 아닐지. 60대는 60대의 영화를 만들면 되죠. 60대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가 분명히 있고요.
그런 면에서 김성수 감독님의 차기작이 무척 기대됩니다. ‘아수라’처럼 가차 없는 거 한 번 더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ㅎㅎ (투자자들이 절대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인터뷰에서 ‘환갑에 천만감독' 얘길 하다 감독님이 그러시더군요. “언젠가는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먼 산에 별처럼 박아놓고, 그 별빛을 보면서 내 인생을 쭉 걸어왔다.” 여러분도 가슴에 꿈 같은 별이 박힌 먼 산을 품고 계신가요. 저요? 전 있어요. 아주 큰 별은 아니고 반짝반짝 작은 별이 오종종 총총히 박힌 산. 그 산을 향해 가는 길에 김성수 감독님 같은 분도 뵙고, 부족하지만 기사도 쓰고. 그러니 매일 근무해도 즐겁고요. 허리는 좀 아프네요. 자, 내일 월요일 출근을 위해 오늘은 이만 퇴근해야겠습니다. 들어가서 ‘선재 업고 튀어'의 변우석 동영상이나 맘껏 보며 피로를 잊어보렵니다. 김성수 감독님 기사 링크는 아래 붙일게요.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환갑 넘어 천만 영화.. 자신할 땐 외면, 마음 비우니 벼락처럼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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