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조각의 성지’에 한국인 작가 이름 건 첫 미술관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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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19. 오후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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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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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주 피에트라산타에
미술관 개관 앞둔 조각가 박은선

15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중심가 두오모 광장에 설치된 ‘무한 기둥-성장’(Colonna Infinita-Accrescimento, 2024)과 박은선 조각가. 높이 11m에 이르는 이 작품은 흰색과 회색 대리석을 번갈아 쌓아 만들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열린다. /박은선 조각가 제공

세상사가 주는 고뇌는 일부러 비우고 또 비웠다. 그 힘으로 30년을 꼬박 돌 앞에 섰다. 연고도 없는 이탈리아 땅. 깨고, 붙이고, 쌓아올려 마치 인생을 빚은 듯한 조각으로 유럽에서 인정받았다. 조각가 박은선(59) 이야기다. 한국인 조각가로 전례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는 그가 30년 세월에 기념비 같은 순간을 맞았다. ‘조각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도시 피에트라산타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올 하반기 개관한다.

피에트라산타는 피렌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높은 돌산이 펼쳐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도 대리석을 구해 작업한 유명한 대리석 산지다. 헨리 무어·세자르 발다치니·마리노 마리니·페르난도 보테로·이고르 미토라이 등 유명 예술가와 장인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박은선은 국내에 대리석 수입 붐이 일었을 무렵 ‘시골이라 작품 활동밖에 할 게 없다’는 이 지역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1993년 이주를 결정했다. 올해로 31년 차. 시민들은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2021년 업적을 인정받아 동양인 최초로 피에트라산타의 ‘명예 시민’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갤러리로 꼽히는 콘티니(CONTINI)가 전속 매니지먼트를 맡은, 각광받는 조각가다.

지난 15일 찾은 ‘뮤지엄-아틀리에 박은선’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유리 공장을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흔쾌히 설계에 나섰다. 후배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이르면 내년부터 후배 예술가들의 전시를 열 예정. 박은선은 “그동안 내 작품만 보고 살아왔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젊은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게 미안하더라. 나도 젊은 시절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며 힘들었다”고 했다. “향후 재단을 만들어 도움 되는 일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15일(현지 시각) ‘뮤지엄-아틀리에 박은선’ 앞에 선 박은선 조각가. /박은선 조각가 제공

절박하고 어렵게 보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집안이 기울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미술교육과(경희대)에 진학했다. 아르바이트만 하다 끝나겠다는 생각에 졸업 후 한국을 떠났다. “말뚝 박을 생각”으로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했지만 궁핍했다. IMF 때에는 너무 어려워 한국에 가족을 보내고 혼자 이탈리아에 남았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알아주는 컬렉터들이 나타났고, 아트페어 등에서 작품이 ‘완판’되며 3년여 만에 가족과 재결합했다.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15일부터 피에트라산타 중심 광장과 옛 성당에서 그의 개인전이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자연히 우러르게 되는 10미터 넘는 대표작 ‘무한 기둥’ 세 점은 공간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감탄을 자아낸다. 컴컴한 성당 안에는 대리석 구슬 안에 조명을 넣어, 우주를 연상시키는 작품이 펼쳐진다. 그의 작품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은 두 가지 색의 대리석을 겹겹이 쌓고, 아래부터 위까지 갈라진 틈이 있다는 것. 대리석을 깬 뒤에 깨진 대리석을 다시 쌓아 올리며 일정하게 틈을 만든다. 그 틈이 빛을 머금도록 조각 내부를 도려내고 철심을 박는다. 비슷한 크기의 조각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도 시간도 2배 이상 드는 그야말로 고된 ‘돌일’이다.

15일(현지 시각) 피에트라산타 산타고스티노 성당에 전시된 그의 작품 ‘무한 기둥-확산’을 보는 관람객들. /김민정 기자

깨진 틈은 그가 살기 위한 ‘숨통’이었다. 비싼 대리석을 깨는 그를 괴짜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살아보자. 숨 좀 쉬고 살아보자’ 이거였어요. 돌을 깨면서 작업장에 갇혀 있는 나의 살길을 찾았던 것 같아요. 금방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깨면 숨통이 트이고 작품이 나를 살렸죠.” 그는 “항상 사는 것도 불안하고 돈도 불안하고, 그 속에서 오로지 작품에 대한 생각이 중심을 잡아줬다”며 “저도 모르게 작품에 그런 불안함이 많이 표현됐던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색의 대리석을 쌓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부족함’과 ‘작업장에서의 열정’ 등 저의 이중성에 대한 고뇌이자 이를 통합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조각을 시작할 때 목표는 ‘10년 후 한 달에 재료비 100만원 정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였고, 그다음 10년에는 1000만원, 그다음 10년에는 1억원을 목표로 했는데 얼추 이뤄졌다고 했다. “앞으로의 꿈도 더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작업실 문제나 재료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다 죽는 것”이다. 과거 작품에 비해 ‘틈’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음을 깨닫고 최근엔 더 파격적인 틈을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며 무의식적으로 몸의 고생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싶더라”며 “‘다시 팔을 걷어붙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용기 내 새롭게 나아가보려고 한다”고 했다.

☞박은선(59)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거주하며 유럽 무대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조각가.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피사·피렌체·로마 등 이탈리아 각지에서 전시를 열었고 2021년 피에트라산타시(市) ‘명예 시민’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야외에 설치된 ‘복제의 연속’이 그의 작품. 2015년에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오는 9월 22일까지 피에트라산타 두오모 광장에 전시되는 박은선 조각가의 작품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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