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이 벌이는 잔인한 쇼 불편하다고?… 현실은 이미 잔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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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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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이 직접 말하는 드라마 ‘더 에이트 쇼’ 해석

‘The 8 Show’에서 참가자들이 지내는 세트. 처음 시리즈물에 도전한 한재림 감독은 “재미와 예술성 사이의 고민을 투영했다”며 “무성영화 같은 첫 장면, 영사기 필름이 불타는 장면 등을 통해 예술로 부를 수 있는 영화가 사라지는 아쉬움도 담았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과 비교하면, 인류애를 걷어냈고 감동보다는 불편함이 남는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The 8 Show’(더 에이트 쇼)가 넷플릭스 TV쇼 부문 국내 1위, 세계 4위(22일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르며 화제다. 비현실적인 게임 규칙을 통해 사회를 풍자한 웹툰 원작 드라마. 영화 ‘관상’ ‘더 킹’ ‘우아한 세계’ 등을 만든 한재림 감독이 각본·연출을 했다. “날카로운 수작” 극찬부터 “‘강남 좌파’가 만든 것 같다”까지 저마다 해석과 평가는 다양하다. 상징과 비유가 가득한 쇼의 제작자 한재림 감독이 22일 질문에 답했다.

이야기는 각양각색의 배경을 가진 8명이 정체 모를 주최자로부터 ‘쇼’에 초대되며 시작된다. 폐쇄된 세트에서 ‘관찰 예능’ 출연자 노릇만 하면 시급을 준다. 돈 벌 생각에 환호했다가 지옥을 맛본다. 지옥을 만든 건 격차. 8명은 서로의 방을 구경하다가 충격에 빠진다. 8층은 대형 평수에 ‘한강 뷰’였지만, 내려갈수록 옹색해져 1층은 좁아터진 ‘담벼락 뷰’ 방이다. 1분당 주는 상금도 1만원(1층)부터 34만원(8층)까지 차이가 났다. 밥과 물이 8층부터 제공돼 8층은 끼니 여탈권까지 쥐었다.

그래픽=이진영

-각 층의 차이가 의미하는 건?

“사회에서 사람마다 다 시급이 다르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에는 시급으로 나뉘는 계급이 있는데 현실에선 잘 안 보인다. 쇼는 이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영악한 8층은 권력을 남용한다. 쇼가 지속되려면 CCTV로 지켜보는 주최자에게 재미를 줘야 하는 구조. 난투극과 고문 등 이들이 벌이는 쇼의 수위가 올라가고, 약자 4인이 잔혹한 일을 겪는다. 끝까지 주최자는 밝혀지지 않지만, 자극적인 콘텐츠가 ‘좋아요’를 얻는 미디어 시장이 연상된다.

-쇼의 주최자는 누구인가?

“관객이다. 이 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상징이다. ‘먹방’을 하다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현실에서 재미의 수위가 거기까지 갔다. 주최자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가 죄책감을 갖고 가게 된다. 조금만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라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지만, 이 작품 역시 오락성이 가득하고 수위 높은 장면도 많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쾌감’을 주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했다. 관객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폭력을 옹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어디까지 재미를 제공해도 되는가 고민하는 내 자신이 투영되더라. 함께 생각해보자고 만든 작품이다.”

한재림 감독

불편함을 안기는 또 다른 부분은 배설물 처리 과정이다. 다리가 불편한 1층 참가자 등 쇼 시간을 늘리는 데 효율이 낮은 사람이 모두의 쓰레기와 배변 봉투를 자기 방에 보관하는 역할을 한다. 한 감독은 이에 대해 “사회에는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일이 아니라 남이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상징하고 싶었다”고 했다.

-원작 제목은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이지만 드라마 제목은 ‘쇼’가 됐다.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서바이벌 게임 장르를 비틀었다. 이 쇼를 계속 하려면 참가자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이 작품 제안을 받은 건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이었는데, ‘오징어 게임’이 너무 잘됐다(웃음). 반대로 다 같이 살아야 하는 쇼를 만들었다.”

기발한 장치가 많지만, 시청 후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후기도 많다. ‘저층’에게 잔인한 현실을 오락적으로만 다룬 느낌도 난다.

-이 드라마도 결국 똑같은 오락 아닌가. 후기 중에 ‘강남 좌파’ 이야기도 있다.

“강남에도 안 살고, 좌파도 아니다(웃음). 내 계급은 3층 정도, 작품은 7층 시선으로 만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는데 자조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텐츠 생산자들이 단순히 재미만 주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가 됐다. 이 드라마가 오랫동안 이야기되며 다양하게 해석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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