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이 엘리트 증오 키워… 포퓰리즘은 그 틈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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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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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 평론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

마틴 울프 지음|고한석 옮김|페이지2북스|656쪽|3만8000원

“나는 경제적 실망이 고소득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 및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경제 평론가 마틴 울프는 이 책에서 서구 선진국 주도의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 결정적 사건 중 하나로 2016년 11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걸 꼽았다. 미국은 단순히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든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그가 포퓰리스트로 부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울프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 종교적 신념, 노골적 인종차별 같은 문화적 요인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지만, 경제가 더 잘 돌아갔다면 이런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무책임한 코로나 대응으로 2020년엔 연임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올해는 76국 42억명이 투표에 참여하는 ‘글로벌 선거의 해’다. 최고 관심사는 단연 트럼프의 귀환이다. 트럼프는 오는 1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리턴매치(재대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경제적 실망은 이제 사그라들었을까. 코로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소득 정체에 분노하는 저학력 백인들이 트럼프 부활의 땔감이 되고 있다. 울프는 책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문제를 파고든다. “자본주의는 번영과 꾸준한 발전을 가져다 주는 대신 치솟는 불평등,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일자리, 거시경제의 불안정성을 초래했다.” 미국은 전후 번영의 바탕이던 제조업이 저물고, 대신 금융, 의료, 빅테크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와중에 독점이란 ‘참호’를 팔 수 있는 소수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뒤처지고 있다. 마치 땅을 소유한 지주가 지대를 받듯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플랫폼을 만들어 독점적 지대를 받는 새로운 ‘지대 추구 자본주의’가 나타났다고 울프는 분석했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같은 경제 위기와 그 여파로 대중은 경제 시스템을 주도하는 엘리트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깊이 새기게 됐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인 것이다. 울프는 이 시스템이 태생적으로 갈등의 싹을 품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민주주의 정치는 일국적이지만 시장경제는 전 세계적이라는 점, 민주주의 정치는 1인1표라는 평등주의 사상에 기반하지만 시장경제는 경쟁에서 성공한 자가 보상을 받는다는 비평등주의 사상에 기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 사이 균형에서 벗어나는 헛발질이 나오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포퓰리스트를 리더로 부를 수 있다.

울프의 분석은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좁은 회랑’이란 책에서 제시한 ‘자유로운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취약한 균형’을 떠오르게 한다. 애스모글루 등은 국가는 국민에게 안전과 보호를 제공할 만큼 강력해야 하지만 자유를 박탈할 만큼 강하지는 않은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국가를 거대 괴물에 비유한 것)’이 돼야 번영으로 가는 좁은 회랑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울프는 엘리트를 적대시하고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포퓰리즘의 종착점은 ‘선동적 독재’ 체제라고 했다. 포퓰리즘은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울프는 “민주주의는 항상 불완전하다. 그렇다고 폭정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울프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번영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봤다. 그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적 정치 없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고, 민주주의 역시 시장경제 없이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는 혼인 같아서,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아도 헤어져 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고쳐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울프는 ‘복지 자본주의’란 개념을 제안했다. 지속 가능한 생활 수준 보장, 좋은 일자리, 기회의 평등, 사회 안전망, 특권의 종식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지금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로 고통받고 있다. 이런 환경은 포퓰리즘 정치가 확산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자본주의 밖에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쳐 써야 한다는 울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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