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없는 더위 피해 시민들 발길
취객 고성·킥보드 음주운전 ‘눈살’
지자체 금주구역 지정 확대 추세
서울시 개정 조례안 시의회 계류
일각선 “만취자 소동만 계도 필요
금주구역 지정은 너무 과해” 반발
서울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10일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오후 8시를 넘어서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공원을 찾는 시민들 발걸음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강변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얼음 컵에 하이볼 등을 만들어 마시는 모습도 군데군데 보였다.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외국인들을 보고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이 “한강에 술판을 차렸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올해 서울에서만 30일 넘게 발생한 열대야로 한강공원으로 피서를 나온 시민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공원 내 금주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가족들이 주로 찾는 공공장소인 만큼 음주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규제라는 의견이 맞선다. 일부 지역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부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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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시는 이미 2018년부터 직영공원 22곳을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심한 소음이나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자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음주 행위가 아닌 음주 후 피해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보니 대부분 계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한계가 있었다. 시에 따르면 이를 위반해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없다. 과도한 규제 논란 속에 시의회는 “국민 공감대”를 이유로 금주 구역 지정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고, 해당 조례안은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시민들은 금주 구역 지정에 대해 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부분적인 규제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만난 임모(33)씨는 “‘한강 치맥’이 관광문화 콘텐츠가 되면서 한강을 찾는 외국인이 많다”며 “내외국인들이 이용수칙을 잘 지키게 유도·관리할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 공원에서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 파티를 즐기는 ‘한강 무소음 DJ 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맥주를 든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모(25)씨 역시 “만취해 소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계도하면 되는데 금주 구역 지정은 과하다”며 “맥주 한두 캔 마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인근 주민 정모(49)씨는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많이 타는데 술을 마시고 타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며 “술을 가볍게 마셔도 위험할 수 있어서 음주를 금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모(54)씨는 “전면 금지는 반발이 클 것 같고 일부 금주 구역과 금주 시간대를 정해서 부분적으로 음주를 금지하는 게 낫다”고 했다.
2021년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금주 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된 이후 공원 등 공공장소 금주 구역을 늘리는 지자체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광진구는 지난해 어린이공원을 첫 금주 구역으로 지정한 뒤 중곡동 긴고랑공원과 구의동 무궁화공원 등 금주 구역을 넓히고 있다. 인천 동구도 화도진공원 등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했다. 부산 수영구는 광안리 인근 대표적인 관광지인 민락수변공원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했는데 주변 상인들은 상권 침체를 이유로 금주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